[법조 트렌드①] 공익제보자 보호의 역설: 사학 권력과 무력한 사법 시스템

2025-05-01     최기형 기자
‘보호받지 못하는 공익’이라는 법적 패러독스.  사진=일광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 서울북부지방법원이 일광학원 전 이사장 직무대리에 대해 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을 인정하고 약식명령을 내린 것은, 사법부가 사학 권력의 조직적 보복에 제한적이나마 제동을 건 첫 사례다. 그러나 권익위 명령 불이행, 경찰의 부실 수사, 검찰의 소극적 대응 등 일련의 과정을 되짚으면, 한국 법조 시스템은 여전히 공익제보자 보호라는 기본 원칙에 대해 구조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보호받지 못하는 공익’이라는 법적 패러독스

공익제보자 보호법과 부패방지권익위법은 공익신고 이후 발생하는 불이익 조치를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일광학원의 보복성 징계에 대해 ‘불이익 조치’로 판단하고 신분보장조치를 명령했다. 그러나 일광학원은 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5년 가까운 기간 동안, 복직된 공익제보자를 과학실에 단독 배치하는 등 사실상의 직장 내 격리 조치를 유지했고, 사학수당 지급도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이번 서울북부지방법원의 유죄 판단은 법적으로 명확한 ‘공익제보자 권리’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적용되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약식명령이라는 형식은 상징적 선언 이상의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처벌의 실효성보다, 보호 체계의 무능함이 더 강하게 부각되는 대목이다.

경찰 수사와 검찰 송치, 구조적 방임의 사례

이번 사건의 초기 수사는 성북경찰서에서 시작됐지만, 거의 1년 가까이 실질적인 조사 없이 지연되었다. 결국 경찰은 사학수당 관련 신분보장조치 불이행에 대해서만 검찰에 송치했고, 보복성 징계 및 격리배치 등 ‘불이익조치 금지 위반’ 혐의는 증거 부족과 인과관계 불명확을 이유로 불송치 처분했다.

경찰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미 인정한 ‘공익제보와 불이익조치의 인과관계’를 사실상 무시했고, 이는 명백한 수사의 축소이자 무력화다. 수사기관이 공익제보자 보호를 단순한 내부 분쟁 수준으로 축소하는 관행은 제도적 보호망의 실질적 작동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이 제출받은 재수사 요청서가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이 지점에서 이미 수사기관과 사법 시스템의 온도차는 명확히 드러나 있다.

법제도와 집행력 사이의 단절

공익제보 보호 관련 법률은 비교적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부패방지권익위법 제62조와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5조는 각각 신분보장조치의 이행과 불이익조치 금지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위반 시 형사처벌을 예고한다. 그러나 해당 법령은 사학법인 같은 비공공기관에 대해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또한 약식명령이라는 방식은 공익제보자 보호 제도의 상징적 효과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법적 집행력이라는 실질적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 법원의 유죄 판단은 분명하지만, 이 판단이 사학 권력의 구조적 탄압을 멈추게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법조 시스템 내부의 공익감수성’ 재정립 필요

이번 일광학원 사건은 단지 한 사학재단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경찰, 검찰, 법원으로 이어지는 법조 시스템 전반이 ‘공익제보’라는 개념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집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제도는 있으나, 그 제도를 실행하는 기관 내부의 공익감수성이 부재할 때, 보호는 이름뿐인 장식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공익제보는 내부고발자의 양심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가 이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약식명령으로 출발한 이번 사건은 오히려 ‘법조 시스템이 진정 공익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