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트렌드] 내란 재판이 드러낸 위증 구조: 기억 삭제의 언어와 사법의 응답
권력에 의한 기억의 통제
[KtN 최기형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부와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병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내란 관련 재판은, 단순한 형사절차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범죄를 통해 작동한 방식과 그 이후 은폐에 이르는 조직적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25년 4월 마지막 주 공판은 진술의 충돌을 통해 ‘기억 상실’이라는 진술 방식 자체가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냈다.
진술이 아니라 전략으로 작동하는 ‘기억 상실’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2025고합51 사건의 핵심은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가 국회의원 체포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가이다. 이현일 전 수사기획계장은 방첩사령부로부터 체포조 지원 요청을 받고, 영등포경찰서에 병력 편성을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체포 대상이 정치인이라는 점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통화 녹취에는 “국회 가면 누구 체포하겠느냐”는 발언이 포함돼 있었고, 구민회 전 수사조정과장은 이현일 전 계장에게 ‘이재명과 한동훈’이라는 이름을 명확히 전달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박창균 전 형사과장은 당시 상황을 '정치인 체포 지원'으로 인식했다고 진술했다.
이들 간 진술은 상호 충돌하며, 그 간극은 단순한 기억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형식적으로는 ‘몰랐다’는 방어 논리지만, 실질적으로는 위계적 책임의 연쇄를 차단하려는 전략적 진술로 평가된다. 이처럼 조직 내 진술이 조율되고 있다는 의심이 설득력을 얻는 상황에서, 재판부는 공모 구조의 실체에 대해 사법적 해석을 확장하고 있다.
군사법정에서 드러난 명령과 책임의 불일치
서울 용산의 군사법정에서 진행 중인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 대한 공판에서는 ‘몰랐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는 진술이 반복됐다. 그러나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증언은 이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곽종근 전 사령관은 6월부터 계엄 계획이 논의됐으며, 11월 9일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병력 배치 방안이 구체화되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곽종근 전 사령관은 계엄 해제 직후 여인형 전 사령관이 “계엄을 TV로 처음 알았다고 말하라”고 지시했고, 보안폰 통화기록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조직 내부에서 실행된 이러한 사후 조치는, 계엄 실행 자체뿐만 아니라 실패 이후를 대비한 은폐 시나리오가 사전에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이진우 전 사령관은 “출동 병력에게 총기를 차량에 두고 내리게 했다”고 진술하며 무장 억제 조치를 자발적으로 수행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재식 합참전비태세 검열차장은 “계엄 상황이라 하더라도 병력은 원칙적으로 무장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지휘책임과 판단능력을 동시에 부정하는 이진우 전 사령관의 진술은 군사 명령 체계상 합리성을 갖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증이 기록되는 법정, 사법은 구조를 묻고 있다
2025년 내란 재판은 윤석열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단죄로 시작됐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경찰과 군의 명령 체계, 보고라인, 책임 분산 구조 등 권력 전반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반복되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은 방어권의 행사 차원을 넘어, 권력 내부의 정보 은폐 전략으로 구조화되고 있다.
참여연대가 발간한 주간내란재판 리포트는 이번 재판을 “권력에 의한 기억의 통제”라고 평가했다. 이는 단지 개별 피고인의 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넘어, 국가 시스템 내부에서 책임을 지우는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부는 오는 10월까지 총 15회 공판을 예정하고 있으며, 다음 기일은 5월 21일로 예정되어 있다. 사법은 지금 진술의 진위 여부만이 아니라, 그 진술이 배태된 구조 자체를 기록하고 있다. 위증과 침묵, 회피와 삭제의 정치가 얼마나 정교하게 조직되었는지를 밝히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