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트렌드①] 콘텐츠는 수출인가, 신기루인가
제조업 수출 둔화 시대, 콘텐츠산업 수출의 실질 기여를 묻다
[KtN 임우경기자]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공급망 재편의 압박 속에서, 한국 수출 구조는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로 대표되던 전통 제조 기반 수출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가운데, 콘텐츠산업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2023년 한국의 콘텐츠 수출액은 132억 달러. 같은 해 섬유(104.8억 달러), 가전(79.8억 달러), 이차전지(82.1억 달러)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겉으로 보기엔 ‘제조를 대신하는 새로운 수출산업’처럼 보이지만, 외환 유입 구조와 산업간 파급 효과, 고용 창출력 측면에서 콘텐츠산업은 아직 실질적 수출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화 수익 구조의 한계: 플랫폼 중심 수익 회수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2023년 발표한 「콘텐츠산업 수출통계 조사」에 따르면, 콘텐츠 수출은 전체 산업 수출 대비 1.9%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문제는 수익의 회수 구조에 있다. 영상과 음악, 게임 등 주요 콘텐츠는 대부분 넷플릭스, 유튜브, 애플뮤직 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며, 최종 수익의 대부분은 해외 사업자가 회수하는 구조다.
플랫폼에 공급된 콘텐츠는 계약 구조상 ‘완성품 납품’이나 ‘전속 사용권 판매’ 형식이 일반적이며, 스트리밍 수익 분배율은 대부분 콘텐츠 제작사보다 플랫폼 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점유하고 있다.
수출 실적은 집계되지만, 해당 수익이 국내 기업의 실질 수익으로 환류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산업 파급 효과의 이중성: 생산유발은 높으나 고용은 미약
KOCCA와 KDI의 협력 분석에 따르면 콘텐츠산업의 생산유발계수는 1.572로 제조업 평균(1.083)을 상회한다. 콘텐츠가 소비될 때 유발되는 부가가치의 규모는 타 산업보다 크다. 그러나 고용유발계수는 10억 원 투자 시 13.8명으로, 같은 기준의 섬유(29.3명)나 전자부품 산업(23.7명)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친다.
콘텐츠산업이 고부가가치 중심의 자산기반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노동집약적 산업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특히 OTT·게임·디지털 애니메이션 분야는 기술 집중도가 높아 생산 자동화에 가까운 구조를 띠고 있어,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먼 구조다.
소비재 연계 수출의 가능성과 현실
한국수출입은행은 콘텐츠 수출 1억 달러 증가 시 소비재 수출이 1억 8천만 달러 증가하는 파급효과를 보고한 바 있다. 이는 콘텐츠가 관광·화장품·식품 등 후방 산업의 수요를 견인할 수 있다는 논리적 기반을 제공한다.
그러나 콘텐츠-소비재 연계는 팬덤 기반 고관여 소비자 집단에 한정되며, 대다수의 일반 시청자에게는 실제 소비재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콘텐츠 소비 이후 소비재 구매가 유도되기까지의 사이클은 브랜드 충성도, 언어장벽, 유통망 접근성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단순한 콘텐츠 시청 경험이 실질 소비 전환으로 이어진다고 보기엔 구조적으로 제약이 많다.
수치의 환상에 가려진 구조적 취약성
콘텐츠산업은 무형의 자산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관세 장벽을 받지 않고 빠르게 확산된다. 2025년 상반기 기준, UNCTAD 시청각·멀티미디어 수출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4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플랫폼, 유통망, 수익분배 구조의 주도권은 여전히 해외 기업에 집중돼 있다.
한국은 콘텐츠를 ‘제작’하지만 ‘유통’하지 못하고 있으며, K-콘텐츠의 확산은 한국 기업이 아닌 글로벌 플랫폼의 재무제표를 성장시키는 데 더 기여하고 있다.
콘텐츠산업이 수출 중심 산업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IP 권리화, 수익 분배구조 개편, 국내 플랫폼 경쟁력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의 수출 확대는 그 전제가 아직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형만 성장한 결과에 가깝다.
콘텐츠는 가능성이지만, 구조가 문제다
콘텐츠산업은 분명 한국 경제가 보유한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현재의 산업 구조로는 콘텐츠가 수출경제의 주축이 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플랫폼 종속, 수익 역류, 낮은 고용 유발 효과, 실물 소비 연계 부족 등 다층적인 취약 요소가 공존하고 있으며, 단일 수출 수치만으로 전체 산업 구조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은 과도한 낙관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출 통계를 근거로 한 산업 낙관이 아니라, 콘텐츠산업의 구조적 개편을 위한 정책적 명료성이다. 창작자가 소외되지 않고, 수익이 환류되며, IP가 자산화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한, 콘텐츠는 수출이 아니라 신기루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