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트렌드④] 지원인가 진흥인가
30년 콘텐츠산업 정책의 성과와 구조적 한계
[KtN 임우경기자]1994년 문화산업정책이 처음으로 정부 정책 어젠다에 편입된 이후, 콘텐츠산업은 ‘문화의 확산’에서 ‘국가전략산업’으로 위상을 높여왔다. 한류의 확산, K-콘텐츠의 수출 급증, BTS·오징어게임 등 글로벌 사례들은 콘텐츠산업이 단순한 문화 영역을 넘어 무역·외교·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주는 산업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산업 규모 확대에 비해 정책의 실질적 기여, 특히 창작 기반의 생태계 보호와 유통 구조의 독립성 확보에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가 남아 있다.
산업 진흥 정책의 역사: 양적 확대와 구조적 반복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진한 콘텐츠산업 정책은 ‘지원’에서 ‘진흥’으로 전환을 선언했지만, 정책 프레임은 여전히 보조금, 프로젝트 공모, 제작비 일부 매칭 등 공급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2002년 설립된 콘텐츠진흥원을 필두로, 2000년대 후반부터는 문화산업펀드 조성, 글로벌 콘텐츠 마켓(KoCCA, BCWW), 해외 공동제작 지원 등 시장 진출 기반 구축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제작과 기획 단계에 집중돼 있으며, 유통 주권, 창작자 권리 보호, 국내 플랫폼 육성 등 장기적 인프라 구축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2022년 제정된 「한류산업진흥기본법」은 범부처 차원의 콘텐츠산업 통합 진흥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제도적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법안의 실제 시행령과 세부 시행 체계는 산업 현장의 구조적 병목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며, 부처 간 역할 중복과 예산 분산이라는 정책 병목 현상도 여전하다.
‘창작자 기반 산업’이라는 구호와 현실의 간극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9년 이후, 창작자 인력 양성, 제작환경 개선, 불공정 계약 관행 개선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워 왔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운영, 웹툰·드라마·예능 등 분야별 표준계약서 확산 등이 있다.
하지만 실제 계약 현장에서는 표준계약서의 실효성보다 대형 유통 플랫폼과 제작사의 자율계약 비중이 압도적이다. 제작사의 납품 계약은 여전히 ‘전속권 양도’ 형식이 일반적이며, 창작자는 IP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다.
실제 방송영상 콘텐츠 제작 종사자 다수는 창작자가 아닌 ‘용역 계약’으로 처리되며, 콘텐츠산업의 창작 기반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은 구조적 과제로 남아 있다.
산업 규모는 커졌지만, 구조적 양극화는 심화
2023년 기준 콘텐츠산업 매출은 150조 원에 육박하고 있으나, 이 중 10대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1.4%에 달한다. 콘텐츠산업이 고부가 산업임에도 중소제작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1% 수준에 불과하며, 지속가능한 재투자 기반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제작 지원은 주로 신인 창작자 육성에 집중되어 있으며, 중견제작사나 독립제작사의 연속적 제작 환경 조성에는 실질적 대안이 부재하다. 2024년 콘텐츠 산업 육성 예산은 약 7,100억 원 규모지만, 이 중 상당수는 기획개발보다는 단기 프로젝트성 공모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진흥에서 전환으로: 정책 방향의 재설계 필요
콘텐츠산업의 진흥이 ‘보호’와 ‘지원’의 수준에 머무를 경우, 산업 내부의 구조적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확산’을 위한 콘텐츠 제작 지원에 집중돼 있었지만, 이제는 유통 플랫폼 확보, 해외 수익의 국내 환류 구조 설계, IP 권리화에 기반한 창작자 중심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콘텐츠산업이 금융시장과 연계되어 산업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펀드조성·수익배분 기반의 금융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정책은 창작자의 노동환경을 보장하고, 콘텐츠의 지속가능한 구조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공급과잉을 부추기는 단기 지원이 아니라, 창작-유통-수익 분배 전 과정에 걸쳐 산업 구조의 질을 개선하는 ‘전환 정책’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