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렌드] 강제 단일화의 파국, ‘사기 경선’ 프레임이 무너뜨린 정치적 정당성

2025-05-10     최기형 기자
지도부의 ‘책임 정치’인가, 권력 구조의 조작인가.  사진=2025 05.09  국민의힘 의원총회  단일화 논란 영상  mbc 영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내홍으로 정당 정치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 당 지도부는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5월 11일을 앞두고,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와의 단일화를 명분으로 김문수 후보의 사퇴를 압박했다. 이에 맞선 김문수 후보는 경선을 통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임을 근거로 단일화 거부를 선언하고 당무우선권을 발동했다. 지도부는 단일화를 위해 지도부 총사퇴 카드를 꺼냈고, 김 후보는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하며 정면 충돌했다. 정치적 수사와 절차적 공방이 뒤엉킨 이 사태는 단순한 후보 간의 이견을 넘어, 정당 내 민주주의와 정치적 정당성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지도부의 ‘책임 정치’인가, 권력 구조의 조작인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는 김문수 후보가 사퇴하지 않으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대선 승리를 위한 단일화가 ‘시대적 명령’이며 ‘민심의 압도적 요구’라는 프레임이 반복됐다. 지도부는 단일화를 통해 기호 2번 확보, 당 조직력 유지, 정치자금 사용 등 실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현실론도 내세웠다.

그러나 이 결정은 정치적 정당성을 내세우기엔 무리한 측면이 크다. 지도부가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를 사전에 정지시키고, 외부 인사인 한덕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밀어붙이는 것은 명백한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이다. 더욱이 당헌·당규상 경선 결과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선출’이 아니라 ‘교체’를 전제로 한 전략적 공작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지도부가 강조하는 ‘민심’도 근거가 빈약하다. 단일화 찬성 여론이 높다는 당원조사 결과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경선 무효화의 명분이 되지 않는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여론의 추이를 반영하는 것 이상으로, 정당 내부 절차를 통해 정당성을 증명하는 데 있다.

김문수의 저항은 정치적 생존이 아닌 정당 방어

김문수 후보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단일화 거부가 아닌, 정당 내부 권력 장악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경선을 세 차례나 치렀는데 왜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다시 하느냐”며, 당 지도부가 경선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전국위·전당대회 소집 자체를 무력화하려 했고, 법적 대응으로까지 확전시켰다.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지만, 이는 법률적 판단일 뿐 정치적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단일화 의지를 경선 중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후보 자격 박탈 가능성을 용인하는 판결은 당내 갈등을 제어하기보다는 오히려 당헌과 정치적 신뢰를 훼손하는 결정으로 작용했다.

김문수 후보는 단일화가 전략적 효율을 넘어 당헌을 무력화시키는 권력작용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한덕수 후보가 당내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일화를 요구하고, 당 지도부가 이를 받아들이는 구조는 '사전 기획된 권력 승계 시나리오'에 가깝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단일화가 아니라, 사실상 탈경선 후보에 의한 ‘후보 탈취’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사기 경선’ 프레임, 자승자박으로 되돌아오다  사진=2025 05.09  국민의힘 의원총회  단일화 논란 영상  mbc 영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기 경선’ 프레임, 자승자박으로 되돌아오다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사기 경선”이라는 표현이 회자되고 있다. 애초부터 지도부가 원하는 후보를 위한 경선이었다면, 그 결과에 따라 후보가 결정된 이후 다시 단일화 명분을 들고 후보를 교체하는 행위는 정당성과 책임 모두를 잃게 만든다. “단일화는 정권교체를 위한 선택”이라는 지도부의 수사는, 결과적으로 경선 참여자와 유권자를 모두 도구화하는 셈이 됐다.

정당 정치는 국민의 참여와 공정한 절차 위에 서야 한다.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를 사후적으로 교체하려는 시도는, 경선 제도 자체를 불신하게 만든다. ‘사기 경선’이라는 비판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정치 구조 자체가 신뢰를 상실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한덕수 후보가 “단일화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국민의힘의 절차에 따르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그의 등장 자체가 절차 바깥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개입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단일화 요구는 점점 대선 전략의 일부가 아닌, 정당 내 권력 분점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당성 상실이 초래할 정치적 파장

이번 사태는 단순한 대선 전략 실패가 아니라, 보수 정당 내부 권력 구조의 위기다. 정치적 정당성이 상실된 상태에서 어떤 후보가 선출되더라도 그 기반은 약할 수밖에 없다. 김문수 후보의 반발은 비단 개인의 이견이 아니라, 정당 정치의 형식과 내용을 모두 무시한 결과로 촉발된 제도적 위기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경선의 정당성을 회복하고, 당내 절차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대선 승리’라는 전략적 명분은 정당 내부 민주주의를 훼손한 채로 성립할 수 없다. 강제 단일화는 기획된 정치공작의 전형으로 남을 수 있으며, 정당사에서 회복 불가능한 오점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정당은 단일화보다 절차로 존립한다. 지금 국민의힘이 잃은 것은 후보 하나가 아니라, 정치 시스템의 신뢰 자체다. 공천과 단일화의 문제는 정당의 자율성과 민주주의의 기준을 지키는 방식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지도부가 택한 무리한 지름길은, 결국 가장 먼 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