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트렌드] 삼성전자, 플랙트 인수로 글로벌 공조시장 본격 진출…데이터센터 냉각 수요 ‘전략적 선점’
고성장 B2B 시장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전환…AI 냉각 인프라 선점 위한 기술 중심 M&A
[KtN 박준식기자] 삼성전자가 유럽 최대 공조기기 제조업체 플랙트그룹(FläktGroup)을 인수하며 글로벌 공조(HVAC) 시장 진출에 본격 나섰다. 이번 인수는 단순 제품군 확장이 아니라, 데이터센터 중심의 냉각 수요 급증이라는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한 ‘기술 중심 전략’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5월 14일,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Triton)이 보유한 플랙트의 지분 100%를 약 15억 유로(한화 약 2조 4000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인수 절차는 연내 마무리될 예정이다.
플랙트는 1918년 독일에서 설립된 기업으로, 병원·공항·박물관 등 특수 목적 시설과 글로벌 데이터센터에 고효율 공조설비를 공급해 온 유럽 대표 HVAC 업체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를 통해 공조 사업의 무게 중심을 기존 가정용 시스템에어컨에서 산업용·상업용 B2B 중심으로 전환하며, 고성장 시장을 겨냥한 전략적 전환에 착수했다.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 HVAC 산업 구조 재편의 핵심
공조 산업은 전통적으로 건설·설비 분야의 후속 공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생성형 AI 확산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규제 강화로 인해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냉각 수요가 급격히 확대되며, HVAC 산업이 전략 인프라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MARC에 따르면 글로벌 중앙공조 시스템 시장은 2024년 610억 달러 규모에서 2030년 990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AI 연산 서버와 전력 집약적 장비가 집중된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은 같은 기간 동안 연평균 18% 성장해, 441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플랙트는 액체냉각 방식(CDU, Coolant Distribution Unit) 등 데이터센터 특화 냉각 기술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2024년 데이터센터 전문 시상식 ‘DCS Awards’에서 냉각 혁신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이 기술은 단순 기계장비 공급을 넘어, 설계·제어·에너지 최적화까지 포함된 고부가 솔루션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DX부문 노태문 사장은 “공조 사업은 AI, 데이터센터, 스마트빌딩 등 고성장 산업의 기반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며 “플랙트 인수를 통해 글로벌 B2B 시장에서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과 조직 동시 확장…레녹스 합작·플랙트 인수 ‘투트랙 전략’
삼성전자는 2024년 5월 미국 공조업체 레녹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북미 가정용 및 상업용 HVAC 시장 공략에 나섰고, 이번 플랙트 인수를 통해 유럽 B2B 공조 시장에도 본격 진입하게 됐다. 북미에서는 유통망, 유럽에서는 기술 중심 기반 확보를 각각 노리는 구조다.
조직 차원에서도 에너지 전문성을 보강했다. 2024년 8월, LG전자에서 30년간 에너지·공조 비즈니스를 담당한 최항석 상무를 에어솔루션 비즈니스 팀장으로 영입했다. 북미·유럽 현장을 두루 거친 최 상무의 경험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B2B 수주 전략에 실질적 기여를 할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삼성전자가 보유한 스마트싱스(SmartThings), b.IoT 기반 제어 기술과 플랙트의 ‘FläktEdge’ 솔루션을 통합하면 데이터 기반 공조 제어 플랫폼 경쟁에서도 입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고정 수익 기반의 유지보수 및 서비스 사업 확대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국내 자동제어 산업에도 긍정적 파급…이삭엔지니어링, 독점 공급 계약 체결
삼성전자의 HVAC 사업 확장은 국내 기술 기반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삭엔지니어링은 2024년 1월, 삼성엔지니어링과 2년간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글로벌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HVAC 콘트롤 시스템을 단독 공급하게 됐다.
이삭엔지니어링은 반도체·2차전지·바이오 산업 등에서 자동제어 기반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을 공급해 온 기업으로, 이번 계약을 통해 냉각 및 공조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기회를 확보했다. HVAC 산업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스마트 제어와 에너지 효율 기반 서비스 산업으로 이동하는 흐름에서, 이삭엔지니어링과 같은 국내 기술 기업이 전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고 있다.
공조 시장, 전통 제조에서 기술 인프라 산업으로 재편
삼성전자의 플랙트 인수는 냉각 기술이라는 ‘그늘 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통해, 미래 고성장 시장의 인프라 지위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AI·로봇·클라우드 기반 연산 수요 확대와 기후 리스크 대응이 동시에 요구되는 환경에서, 고효율 HVAC 솔루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기존에는 일본 다이킨, 미국 존슨콘트롤즈, 독일 지멘스 등이 공조 산업을 주도해왔지만, 이제는 스마트 제어, 데이터 기반 운영 최적화, 탄소 절감 기술 등 IT 융합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전자기업의 기술과 제어 역량이 HVAC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선택한 플랙트는 단순한 유럽 HVAC 강자가 아니다. 데이터센터 냉각이라는 신산업의 중심에서, 기술과 신뢰를 동시에 확보한 전략적 거점이다. AI가 만드는 열, 그 열을 다스리는 기술. 삼성전자는 그 열을 제어할 권리를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