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표 계산에 갇힌 주거 공약, 정책 실종의 시대를 말하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집'을 둘러싼 무능한 정치와 사회적 무관심의 공범 구조

2025-05-14     최기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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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최기형기자]2025년 대선 국면에서 확인된 것은 ‘무관심의 위력’이다. 집값과 전월세 불안은 윤석열 정부 내내 한국 사회를 흔든 핵심 문제였고, 청년·고령층·중산층·세입자 등 전 계층이 주거 불안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주거·부동산 공약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제된 정책 언어로 포장된 공약들은 있었지만, 그 내용은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위한 방어적 선택에 머물렀다.

현직 대통령의 퇴진과 내란, 탄핵이라는 국가적 위기 이후 치러지는 대선에서 ‘주거권’이라는 본질적 의제는 정치와 언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는 특정 후보의 태만이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다. 집은 사적 자산이자 공적 권리이며, 한국 사회에서 주거는 가장 가시적인 불평등의 지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그 질문은 던져지지 않았다. 누가 이 침묵의 동조자인가.

‘공급’, ‘완화’, ‘감면’의 반복… 구조 개혁은 실종됐다

후보 대부분의 주거 공약 키워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공급 확대, 규제 완화, 세제 감면. 정책 언어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의 ‘빚내서 집사라’ 기조, 문재인 정부 시기의 ‘양극단 반복’, 윤석열 정부의 ‘시장의 자율에 맡기자’는 태도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공공임대주택의 품질과 비율 개선을 언급했으나, 실효성 있는 실행 프레임이 부재하다. 공급 구조 개편 없이 청년에게 공공분양을 제공하겠다는 발상은 정책 설계의 무지에 가깝다. 전세사기 방지와 월세 세액공제는 필요하지만, 임대차법 개선과 같은 구조적 장치 없이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공약은 더욱 명확하다. 민간개발 활성화, 대출 완화, 세금 감면 중심의 패키지다. 그러나 이는 윤석열 정부 하에서 반복된 집값 상승과 투기 과열을 낳았던 정책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부동산 세제를 약화시키고, 재개발 권한을 기초단체로 이양하겠다는 공약은 결과적으로 투기권력을 지방까지 분산시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주거 공약을 대선 10대 공약에서 배제했다. 이후 생애주기별 세금 감면,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을 별도 발표했지만, 대출 확대와 임대사업자 지원 중심이다. 세입자, 고령층, 저소득층에 대한 정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40%에 달하는 무주택 세입자의 주거 불안을 방치한 채, 소수 자산 보유자와 시장 참여자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누락된 ‘주거권’, 사라진 헌법의 약속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누락된 ‘주거권’, 사라진 헌법의 약속

대한민국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한다. 주거는 그 기본에 속한다. 그러나 대다수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에는 ‘주거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종돼 있다. 주거는 ‘투자 수단’, ‘시장 상품’으로만 해석된다. 임차인의 권리, 주거 취약계층의 안전, 주거비의 사회적 적정성,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의 건축 전환 등은 논의의 테이블 위에 오르지 못했다.

유일하게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전세사기 피해자 보호, 공공임대 200만 호, 임대차 제도 개편, 녹색 리모델링 등을 포함한 종합 공약을 제시했다. 특히 최저주거기준 미달 주택의 임대 금지 공약은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인 ‘주거의 최소 질 보장’ 개념을 반영한 진보적 접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소수 정당의 한계 속에 주류 담론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포기한 자리, 시장이 지배한다

정부가 주거 문제를 포기하면, 그 자리는 시장이 채운다. 시장은 이윤을 따라 움직인다. 이윤은 위험을 요구하고, 위험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갭투자, 지분 쪼개기… 이 모든 현상은 정치의 무관심과 규제 완화의 산물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그러한 흐름이 전면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용적률 상향, 분담금 완화는 겉보기에 공급 확대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산 가격 상승 유인을 제공하는 개발 드라이브다. 이는 원주민의 퇴거, 임대료 급등, 사회적 혼합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녹색 리모델링조차 기존 건물 중심의 에너지 효율 개선에 그치고 있다. 단열재 교체와 창호 보강은 하겠지만, 취약계층의 집은 그대로 방치된다.

주거는 ‘선심’이 아니라 ‘권리’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주거 공약의 본질은 정치의 편의주의다. 주거 정책이란 명목으로 내놓은 대부분의 공약은 시장과 유주택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소극적 전략’에 가깝다. 그러나 정치가 책임을 회피한 자리는 결국 사회적 불안정과 경제적 양극화로 메워진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공급’이 아니라 ‘전환’이다. 공급의 방식, 소유의 구조, 임대차 제도, 공공주택의 사회적 의미까지 총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유럽 일부 국가들이 이미 실행하고 있는 토지임대부 주택, 협동조합형 주거, 사회적 임대 확대 모델 등은 참고할 수 있는 실천 모델이다.

대한민국 대선은 언제나 미래를 선택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주거에 대한 논의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데 머물러 있다. 시민사회가 먼저 주거권을 요구하고, 유권자가 이를 기준으로 후보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은 정치의 책임이지만, 그것을 감시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다.

주거 문제는 수치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통계가 아닌 삶의 이야기이며, 투자가 아닌 존엄의 문제다. 후보들은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는 그 직시 여부를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대선은 끝나지만, 주거 불안은 계속된다. 선택이 곧 책임임을 증명하는 것, 그것이 오늘 한국 사회에 필요한 민주주의의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