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Insight④] 동양의 직조, 서양의 형식: 박소희가 설계한 혼성의 조형언어

[KtN 기획] 꽃, 몸, 이미지의 제국: 미스 소희, 구조를 설계한 디자이너.

2025-05-17     임우경 기자
[KtN 기획] 꽃, 몸, 이미지의 제국: 미스 소희, 구조를 설계한 디자이너. 사진=YELIM PUBLISHI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오뜨 꾸뛰르는 전통적으로 유럽 중심의 미학과 자재, 장인 기술을 바탕으로 구축된 권위의 공간이었다. 파리 꾸뛰르 협회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소재의 희귀성, 봉제의 정교함, 실루엣의 독창성, 그리고 하우스의 역사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제도 안으로 진입한 한국의 디자이너 박소희는, 단지 구조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의 재료와 감각을 새로운 조형언어로 설계했다.

박소희의 드레스에서 한산 모시, 백자, 자개, 민화는 장식이 아니다. 감각의 표면이 아니라 구조의 일부이며, 정체성의 소비가 아니라 감각의 공존을 위한 조형적 장치다.

한산 모시, 직조된 리듬

2024SS 컬렉션에서 박소희는 서울의 장인을 찾아가 전통 방식으로 대마를 짜는 ‘한산 모시’를 소재로 채택했다. 손으로 짠 이 직물은 산업적 규격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 실과 실 사이의 미세한 틈, 직조에서 생기는 굴곡은 텍스타일을 감각적 표면으로 확장시킨다.

이 한산 모시는 샹그릴라 호텔의 거대한 나선 계단을 배경으로 펼쳐진 컬렉션에서, 고전적인 서양 드레스의 실루엣 안으로 스며들었다. 드레스는 여전히 코르셋과 페티코트의 틀을 따르지만, 표면은 완전히 다르다. 빛을 투과시키는 직물의 투명성과 섬세함은 조형성과 감각성, 전통성과 현대성의 완충지대로 작동한다.

박소희는 이처럼 한국의 전통 직조 기술을 서양의 구조에 접합시키는 방식을 통해, 단순한 ‘소재 차용’을 넘어선 구조적 혼성을 구현했다.

[KtN 기획] 꽃, 몸, 이미지의 제국: 미스 소희, 구조를 설계한 디자이너. 사진=YELIM PUBLISHI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자개, 백자, 부채: 사물의 미학에서 조형의 정신으로

자개 장식은 단지 장신구에 그치지 않는다. 박소희는 자개 상감 기법을 지갑과 벨트, 그리고 드레스의 디테일에 삽입하며, 조형 요소로서의 자개를 도입했다. 마찬가지로 백자의 선과 곡면, 나무 부채의 접힘 구조는 드레스의 실루엣과 레이어링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 자개: 광택과 층위가 감각의 깊이를 구성하는 기호

▶ 백자: 곡선과 여백의 미학이 드레스의 조형 감도에 반영

▶ 부채: 접힘과 펼침이라는 리듬이 스커트 실루엣에서 구현

모두 표면적 상징이 아니라, 조형의 리듬으로 기능한다. 박소희는 ‘한국적 정체성’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구조에 내재된 조형 논리를 동시대적 언어로 번역해낸다.

민화와 모란, 연꽃: 회화에서 실루엣으로

2023~2025년 컬렉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는 민화 속 꽃과 동물이다. 특히 모란, 연꽃, 봉황 같은 상징은 텍스타일 위에 직접 자수로 구현되거나, 드레스 실루엣의 구조로 전환된다. 중요한 점은 이 상징들이 회화적 장식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실루엣 자체를 규정하는 조형적 원리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모란의 곡선 구조는 드레스 하단의 레이어링과 볼륨 배치로 변형되고, 봉황의 깃털은 자수의 패턴이 아니라 소재의 드레이핑 구조로 재해석된다. 이러한 방식은 민화의 평면성을 입체적 조형으로 전환한 방식이며, 전통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전통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KtN 기획] 꽃, 몸, 이미지의 제국: 미스 소희, 구조를 설계한 디자이너. 사진=YELIM PUBLISHI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렌드 분석: 로컬 감각의 구조화

박소희의 혼성 전략은 다음과 같은 현대 꾸뛰르 트렌드와 교차한다.

▶ 하이브리드 소재 전략: 전통 소재를 기술적으로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결을 드러내는 방식

▶ 감각의 다중화: 시각-촉각-빛을 교차시키는 텍스타일 사용

▶ 상징의 재기호화: 국가 정체성의 민족주의적 기호가 아닌, 조형적 구조의 언어로 재구성

전 세계 하우스들이 로컬 장인 기술과 협업하는 최근 흐름과도 연결되지만, 박소희의 방식은 그것보다 더 정교하다. 단순한 콜라보레이션이 아니라, 사물과 감각의 철학적 재구성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정체성의 수출이 아닌 감각의 번역

박소희는 ‘한국적’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자의식의 회피가 아니다. 그의 작업은 국가와 문화의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하기보다, 감각적 조형의 언어를 통해 정체성을 번역하는 방식이다. 이 번역은 상징의 소비를 멈추고, 실루엣의 리듬으로 이어지며, 조형의 구조로 감각된다.

‘동양의 미감’이 아니라, ‘동양의 구조’를 서양의 형식에 결합한 방식. 이 구조적 혼성이야말로, 지금 박소희가 하이패션의 중심에서 수행하고 있는 조형 전략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옷의 차원을 넘어, 패션이라는 언어의 문법을 다시 쓰는 일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