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사칭한 ‘노쇼 사기’…선거판 노린 자영업자 표적 범죄 확산

자영업자 울리는 ‘정당 사칭 사기’…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취약한 일상

2025-05-15     최기형 기자
정치인의 이름 팔아 예약 후 ‘노쇼’…손해만 남긴 식당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강원도 철원, 춘천, 정선. 그리고 전남 고흥. 최근 몇 주 사이 전국 각지에서 유사한 방식의 사기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공통점은 하나다.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또는 국회의원 비서관을 사칭해 전화로 예약을 걸고, 대규모 식사나 선거용품 주문을 요청한 뒤, 아무런 연락 없이 사라진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상호명과 전화번호, 예약자의 직함까지 명확했던 탓에 의심 없이 예약을 수락했다가 수십만 원의 손해를 입는 일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이 사건들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명백한 ‘의도된 사기’이며, 이재명 후보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 위한 악의적 공작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선의로 대응하다 피해를 입은 것은 결국 지역의 자영업자들이다. 선거라는 비상 상황을 틈탄 사기 수법이 실제로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정치인의 이름 팔아 예약 후 ‘노쇼’…손해만 남긴 식당들

춘천 시내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한 자영업자는 최근 “이재명 후보 측의 선거운동 관련 식사 예약”이라는 전화를 받고 25인분 식사를 준비했다. 예약자 명단에는 국회의원 보좌진의 이름이 등장했고, “당일 현장 결제 예정”이라는 설명도 붙었다. 그러나 약속된 시간에 식당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식재료 손실과 인건비를 포함해 70만 원 가까운 손해를 떠안았다.

피해 사례는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고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고흥지구당’이라는 명의로 주문이 접수됐으나, 자영업자가 평소 알던 당 관계자에게 직접 확인 전화를 하면서 피해를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경찰 신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기범의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수사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공직자 사칭까지…정보력 갖춘 사기범, ‘일반 노쇼’와는 달라

이번 사기 사건이 단순한 허위 예약과 다른 점은 조직적 정교함에 있다. 예약 전화를 건 인물은 이름과 직책, 속한 조직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지역구 의원의 비서관이라거나, 선대위 조직팀 소속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식사 예약뿐 아니라 ‘의원과 장관이 함께 참석하는 회의 장소를 찾는다’며 고급 한식당에 단체 예약을 시도한 사례도 있었다.

이 같은 정황은 사기범이 단순 장난이 아닌 목적을 갖고 움직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실제 당직자 또는 의원 보좌진의 실명을 파악하고, 선거일정을 인지한 상태에서 자영업자를 타깃으로 범죄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계획범죄로 분류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용품 사칭 주문 사건에서도 예견됐듯, 이재명 후보의 이미지를 실질적으로 훼손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경찰은 정치적 목적을 띤 사기행각에 대해 엄중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식 창구 없는 자영업자, 검증할 방법조차 없다

정당 관계자의 전화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자영업자가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방법은 거의 없다. 특히 선거철이면 당 관계자들의 실제 예약, 식사 일정이 많아지기 때문에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섣불리 거절하기도 어렵다. 정치인을 상대로 거래가 성사되면 ‘홍보 효과’나 ‘단체 예약’이라는 기대도 작용한다.

그러나 연락이 두절된 이후 자영업자는 오롯이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 소비자보호법이나 상거래법이 적용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서, 예약만으로도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피해 접수가 이어지고 있지만 경찰 수사는 제한적이고, 피해 보상 역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사한 수법의 사기가 다른 지역에서 반복될 수 있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피해 차단 나섰지만…시스템 부재는 여전

더불어민주당은 시도당을 중심으로 자영업자 대상 사칭 신고 접수와 사실 확인 절차에 나섰다. 당 공식 입장을 통해 “정당 명의 또는 당직자를 사칭한 유사 주문이나 예약은 반드시 시도당에 확인하고,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즉시 경찰에 고발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는 정당이 피해를 통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데 있다. 사칭 피해를 입증하고 가해자를 특정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역할이지만, 그마저도 전화번호 비공개나 가상 발신, 대포폰 사용 등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현재까지 수사기관은 개별 사안에 대해 내사에 착수한 상태로, 조직적 범죄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선거철 노린 일상 침해, 자영업자 보호 위한 제도 정비 시급

이 사건은 단지 특정 정당의 명예가 훼손된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반복되는 선거 사기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치권과 수사기관이 사기 피해를 ‘개인 문제’로 간주할수록, 그 빈틈은 더 넓어진다.

자영업자는 여전히 선거철마다 ‘정치와 거래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공공 권위를 사칭한 범죄 앞에서 개인이 책임지는 구조는 불합리하다. 유사한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선 정당과 수사기관이 협력해 검증 시스템을 마련하고, 자영업자를 위한 피해 대응 매뉴얼과 법적 구제 절차를 체계화해야 한다. 정치가 일상을 파괴하는 범죄의 무기가 되지 않도록, 공동체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세심한 보호장치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