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aming Insight①] HBO·Max 2025 콘텐츠 전략, 스트리밍 권력의 재편을 알리다

2025-05-21     신명준 기자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사진=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명준기자] HBO와 Max가 발표한 2025년 콘텐츠 라인업은 단순한 프로그램 편성표가 아니다. 이 라인업은 세계 스트리밍 산업의 권력 구조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밀한 설계도이자, 내러티브 자본의 작동 방식을 입증하는 증거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화이트 로터스의 귀환, 더 펭귄과 듄: 프러포시의 세계관 확장, 잇: 웰컴 투 데리와 더 핏이라는 신규 IP의 배치는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스트리밍 산업은 이제 콘텐츠의 속도보다 구조를 설계하는 국면으로 진입했다.

정체의 시대, IP 구조의 재정렬

2025년 HBO와 Max는 단기 시청률과 신작 바이럴 중심 전략을 과감히 거부했다. 그 대신 HBO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통해 감정의 연속성과 윤리적 복잡성을 중심에 두고, 고정 시청층의 충성도를 더욱 고도화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시즌2는 단순한 복수극의 구도를 넘어, 각 인물들의 내면적 결핍과 공동체 간의 윤리적 충돌을 다룬다. 애비, 디나, 제시, 개일 등 신규 인물의 대거 투입은 게임 원작의 팬덤을 넘어선 내러티브의 확장 실험이다.

이러한 설계는 ‘게임의 드라마화’라는 틀을 넘어서, 스트리밍 산업의 핵심 자산이 더 이상 ‘플랫폼’이 아닌 ‘서사 구조’라는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HBO는 세계관 중심의 감정적 체류 시간을 확장함으로써, 콘텐츠 소비를 일회성 클릭이 아닌 지속 가능한 기억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화이트 로터스 시즌3, 시청자의 지리감각을 흔들다

화이트 로터스 시즌3는 배경을 동남아시아로 옮기고, 주제를 죽음과 영성으로 설정했다. 태국의 사원, 수행, 내세 개념은 서구 시청자에게는 낯선 감각이지만, HBO는 이를 통해 ‘자본과 문명의 불일치’라는 테마를 내러티브에 삽입했다. 서구 관광객의 탐욕과 무지, 현지 문명의 철학과 충돌은 단순한 이국적 배경을 넘어서 ‘시청자의 문화적 자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번 시즌에서 호텔 매니저와 현지 직원의 서사가 축소된 것은 아쉬운 점이지만, 대신 시리즈 전체의 철학적 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이 이동했다. 이는 HBO가 스트리밍 내 콘텐츠를 ‘소비 대상’이 아닌 ‘문화적 논의의 장’으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명확한 의지를 드러낸다.

더 펭귄. 사진=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더 펭귄, 히어로 서사의 주변부에서 중심을 되찾다

더 펭귄은 기존 배트맨 유니버스에서 슈퍼히어로를 의도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범죄권력의 미시적 구조를 조명한다. 오스왈드 ‘펭귄’ 코블팟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권력의 공백, 충성, 배신이 얽힌 내러티브는 마치 디 애쏘프라노스나 더 와이어를 연상케 한다.

이 시리즈는 DC IP를 새로운 장르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실험이자, 기존 슈퍼히어로 장르의 시점을 해체하는 전략이다. 이는 스트리밍 산업에서 '세계관 확장'이 단지 캐릭터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서사의 시점을 전복시키는 일'이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잇: 웰컴 투 데리와 더 핏, 장르적 코드의 재해석

잇: 웰컴 투 데리는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공포 장르의 기원을 사회적 맥락과 연결한다. 페니와이즈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매개로, 공동체 내부의 두려움과 폭력, 억압된 기억을 해체하는 방식은 호러 장르의 공식을 다시 쓴다.

반면 더 핏은 전통적인 병원 드라마의 틀을 빌리되, 캐릭터 중심의 감정 서사와 지역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삽입했다. 두 작품은 장르적 상투성을 해체하면서도, 시청자의 익숙함을 유지하는 이중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는 HBO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익숙함 속의 낯선 감정'을 설계하려는 정교한 서사 공학을 실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조의 시대, 감정의 지속 시간이 플랫폼을 결정한다

HBO와 Max는 속도 경쟁에서 물러나, 구조 설계에 집중하고 있다. 콘텐츠의 발매 주기, 캐릭터 간의 감정 동선, 서사 구조의 분할 방식은 모두 ‘시청의 밀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배치되고 있다. 넷플릭스가 여전히 일괄 공개 모델을 유지하는 반면, HBO는 ‘주간 공개’를 통해 감정의 여운과 해석의 축적을 유도한다.

이는 단순한 발매 전략의 차이가 아니다. 감정이 체류할 수 있는 내러티브 구조를 만드는 일은, 곧 스트리밍 플랫폼의 문화적 위상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HBO는 스트리밍 시대의 서사 자본가다

2025년 HBO와 Max의 콘텐츠 전략은 스트리밍 산업이 기술에서 구조로, 속도에서 정서로 이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전략은 디즈니+의 세계관 중심 모델이나 넷플릭스의 대량 소비 구조와 본질적으로 결이 다르다. HBO는 지금, 내러티브의 밀도와 감정의 지속 시간을 통해 스트리밍 자본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으며, 이 흐름은 단순한 편성 전략을 넘어 ‘문화의 구조’를 다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