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Insight⑤] 런던, 시의 얼굴

낭만적 고딕과 드라마적 과잉, 감정으로 쓰인 메이크업 감정이 지나간 자리, 얼굴은 시작된다

2025-05-28     임우경 기자
시몬 로샤가 제시하는 새로운 낭만주의. 사진=예림출판사(Yelim Publishi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2025년 S/S 런던 패션위크는 뷰티 트렌드의 ‘문학적 정점’을 찍었다. 파리와 밀라노가 구조와 질서에 집중했다면, 런던은 감정과 서사에 무게를 실었다. 얼굴은 상처이자 시(詩)였다. 장식은 장식이 아니었고, 메이크업은 그저 화장이 아니었다. 시몬 로샤와 리처드 퀸을 중심으로 펼쳐진 런던의 뷰티는, 고딕 발레코어와 낭만주의가 뒤엉킨 시적 조각이었다.

런던의 모델들은 웃지 않았고, 얼굴 위의 장식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침묵이야말로 이 도시의 뷰티가 감정을 말하는 방식이다. 클래식의 초상 위에 덧입힌 괴기, 발레리나의 튜튜 위에 얹힌 고딕의 정서, 그리고 장미의 향기를 빌린 피의 색조. 런던은 뷰티를 아름다움의 규범이 아닌 감정의 기호로 다뤘다.

고스 발레코어, 얼굴의 구조를 해체하다

Simone Rocha는 이번 시즌, 발레코어의 구조를 해체하고 고스(goth)적 감정으로 재조립했다. 얇은 시스루 보디슈트, 극단적으로 부풀린 튜튜, 아치형으로 절개된 윈드브레이커는 모두 클래식 발레의 형식 위에 어둠을 얹은 조형물 같았다. 메이크업 역시 그 어둠의 미학을 수용했다.

눈가는 번진 듯한 음영으로 깎여 있었고, 블러셔는 붉은 스포트라이트처럼 얼굴 중심에 붓질되었다. 립은 핏빛이었고, 입술 가장자리는 의도적으로 흐려졌다. 소녀의 얼굴이 아니라, 감정을 감춘 여인의 잔상에 가까웠다. 얼굴은 더 이상 화장을 입은 것이 아니라, 상태로 존재했다.

과잉된 낭만, 리처드 퀸의 장미극

Richard Quinn은 장식을 통해 감정을 밀어올렸다. 튤립, 타프타, 리본, 벨벳, 실크, 스팽글. 온갖 요소가 폭발하듯 등장했지만, 정작 그 폭발은 메이크업에서 완성됐다. 비즈와 크리스털을 눈가에 뿌리고, 붉은 장미를 입술 주변에 그리듯 번지게 하며, 런던 특유의 장식적 과잉이 감정을 해석하는 방식을 보여줬다.

퀸의 뷰티는 고전 회화의 프레임 위에 감정을 흘리는 방식이었다. 정형화된 얼굴 위로 낙서처럼 흩뿌려진 텍스처는, 단지 스타일링이 아니라 슬픔과 희열, 격정과 고요가 충돌하는 극장이었다.

Bora Aksu 패션의 감성적 내러티브, 추모의 공간에서 피어난 우아함 사진=예림출판사(Yelim Publishi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뷰티는 ‘미적 저항’이다

런던의 뷰티는 단순히 유행의 표현이 아니다. 도시의 감정과 정체성, 그리고 제도에 대한 저항의 언어다. JW Anderson은 이번 시즌 극도로 미니멀한 옷 안에 트롱프뢰유(trompe l’oeil) 기법을 도입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었고, 메이크업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얼굴을 무화시켰다. 실존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얼굴은 오히려 존재의 서사를 강화했다.

Bora Aksu는 어머니를 추모하는 쇼를 통해 감정의 시간을 얼굴로 풀어냈다. 핑크빛 크림 컬러, 실크 시폰 위의 플로럴 자수, 정제된 조용한 색조. 메이크업은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를 정제하며, 그 감정의 결을 피부 위에 덮어씌우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K-뷰티가 읽어야 할 ‘문학적 메이크업’

런던 뷰티가 제시한 것은 스타일링이 아니라 시적 감정의 분할이다. K-뷰티 브랜드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과제를 부여한다. 단정한 립, 깨끗한 베이스, ‘예쁨’이라는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 감정을 미학으로 변환하는 기술, 문학적 내러티브를 색조로 번역하는 역량, 그리고 서사의 파편을 소비자 경험으로 끌어올리는 기획력이 필요하다.

K-뷰티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는가’로 이동해야 한다. 런던은 뷰티가 미학이 아닌 언어이자 메시지라는 점을, 가장 과감하고 감정적으로 증명한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