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Insight⑦] 콘텐츠 순위의 다중 점유 현상과 유연한 생명력

'The Handmaid’s Tale'과 'The White Lotus'가 보여주는 확장성의 기술

2025-05-26     신미희 기자
The White Lotus. 사진=IMDB,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 5월 글로벌 스트리밍 순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단일 콘텐츠가 복수의 플랫폼에서 동시에 상위권에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단순한 라이선스 판매 결과가 아니다. 콘텐츠가 더 이상 특정 플랫폼에 귀속되지 않고, 시청자와 플랫폼 사이를 유연하게 순환하며 ‘지속 소비 가능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전환을 보여준다.

 'The Handmaid’s Tale' 시리즈는 Hulu, HBO Max, Paramount+, OSN 등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한 콘텐츠가 서로 다른 지역, 다른 요금 모델, 다른 이용자 층을 겨냥한 플랫폼들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순위를 형성하는 것은 플랫폼 중심이 아닌 콘텐츠 중심의 구조가 도래했음을 상징한다. 특히 'The Handmaid’s Tale'은 2017년 첫 공개 이후 수차례 시즌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문화적 긴장감과 정서적 반향을 유지하며 롱런하고 있다. 이는 단지 시리즈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플랫폼 간 이식성과 내용의 반복 소비 가능성이 매우 높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구조는 'The White Lotus'에서도 발견된다. 이 시리즈는 iTunes, Amazon, Vudu 등 유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동시에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HBO 오리지널이라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다른 플랫폼을 통해 다시 소비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리즈가 시즌2 공개 이후에도 계속해서 시즌1이 소급 소비된다는 점이다. 이는 콘텐츠가 단선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적 내러티브 구조 안에서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다중 점유 현상은 넓은 의미에서 콘텐츠 유통의 탈중앙화와 파편화를 의미한다. 더 이상 하나의 플랫폼에 콘텐츠를 귀속시키는 방식은 유효하지 않다. 콘텐츠는 각 플랫폼이 가진 이용자 기반, 알고리즘, 유료·무료 모델에 따라 서로 다르게 포지셔닝되며, 그 자체로 멀티 채널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작동한다. 'Criminal Minds'는 Disney+, Paramount+ 등에서 동시에 상위권에 있으며, 'The Last of Us' 또한 HBO, OSN, iTunes에서 동시 소비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재상영이 아니라, 콘텐츠가 ‘플랫폼을 넘나드는 사용자 접점’을 지속적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Criminal Minds. 사진=IMDB,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러한 유연한 콘텐츠가 ‘오리지널 콘텐츠’ 이상의 자산 가치를 가진다. 특정 시기에 제작비를 들여 생산된 콘텐츠가 수년간, 다수의 유통 채널을 통해 반복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이는 일종의 지속형 IP 포트폴리오로 기능한다. 여기에 더빙·자막·리패키징 등의 콘텐츠 재가공이 더해지면, 하나의 서사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맞춤형 자산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창작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플랫폼은 단기 흥행에 그치지 않고, 라이브러리형 콘텐츠를 염두에 둔 내러티브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비의 정점이 아닌 ‘순환’을 전제로 한 기획, 플랫폼 단독이 아닌 ‘이동성’을 전제로 한 유통 구조가 미래 콘텐츠 설계의 기준이 되고 있다.

지금의 OTT 시장은 단일 플랫폼의 독점보다, 콘텐츠가 플랫폼 간을 순환하며 유연하게 생존하는 방식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는 산업의 비효율을 줄이고, 콘텐츠의 수명을 연장하며, 플랫폼 간 협업 모델을 확장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이다. 결국 스트리밍 시장에서 콘텐츠의 가치는 제작 시점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