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Insight②] 유통이 가로막는 확장성: 플랫폼은 누구의 편인가
디자이너패션 브랜드가 플랫폼 경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가는 무엇인가 온라인으로 집중된 생존 전략
[KtN 임우경기자] 2024년 기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72.6%는 온라인 유통 채널을 주요 매출 경로로 삼고 있다. 온라인 패션 편집숍, 자사몰, SNS 연계 판매까지 다양한 채널이 활용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집중된 곳은 무신사, W컨셉, 29CM 등 대형 플랫폼이다. 특히 온라인 패션 편집숍만으로 전체 매출의 38.2%를 차지하고 있어 플랫폼 의존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 같은 집중도는 효율성의 결과가 아니다. 유통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브랜드는 플랫폼에 기대어 생존하고 있다. ‘선택’이 아니라 ‘종속’에 가깝다. 많은 브랜드가 온라인 플랫폼 입점을 브랜드 성장의 기회로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매출의 일정 비율을 고정 수수료로 제공해야 하며, 프로모션 참여 요구, 가격 정책 개입 등 실질적인 브랜딩 자율성은 지속적으로 훼손된다.
유통이라는 벽: 입점은 왜 이토록 어려운가
디자이너 브랜드의 50.8%가 유통처와의 관계에서 불합리함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온라인 편집숍(39.1%)과 오프라인 백화점·쇼핑몰(19.5%)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문제 제기가 발생했다. 유통 채널은 매출 창출의 관문이자 브랜드 이미지 형성의 창구이지만, 동시에 가장 높은 진입장벽을 형성하는 구조물이기도 하다.
유통사는 브랜드의 트래픽 기여도를 평가하며 입점 여부를 결정한다. 브랜드가 보유한 팔로워 수, 기존 매출 내역, 콘텐츠 완성도는 ‘선정’의 기준이 된다. 이 구조에서 신진 브랜드가 진입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플랫폼이 요구하는 언어와 전략으로의 ‘동화’다. 결국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은 유통사의 기준에 맞춰 희생된다.
수수료의 늪, 브랜드의 마진은 누구의 것인가
보고서는 유통 불합리성의 핵심을 ‘수수료 구조’라고 지적한다. 많은 디자이너 브랜드가 30% 이상에 이르는 유통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으며, 일부 플랫폼에서는 40% 이상도 관찰된다. 브랜드는 이를 상쇄하기 위해 제품 원가를 낮추거나 가격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품질 저하, 기획 축소, 가격 거품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이는 소비자와의 신뢰 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디자이너는 결국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고 매출을 확보하면서도, 가장 적은 수익을 가져가는 주체가 된다. 유통 시스템의 중심에 서 있지만, 구조적으로 가장 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유통 시스템은 왜 혁신되지 않는가
플랫폼 중심 유통구조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진보된 시스템’으로 포장되고 있지만, 실상은 기존 오프라인 유통권력의 온라인 이식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디지털 플랫폼은 알고리즘 기반의 ‘보이지 않는 평가 시스템’을 통해 브랜드 간의 서열을 더 철저히 구분한다. 이는 브랜드 간 경쟁을 부추기고, 디자이너 간 연대보다는 고립을 강화한다.
정책도 이 구조의 변화에 적극적이지 않다. 유통 관련 지원 정책은 여전히 전시회 참가, 유통 바이어 매칭 등 전통적 방식에 머물고 있으며, 플랫폼 수수료 구조에 대한 실질적 개입이나 조정 시스템은 전무하다. 플랫폼 독점력에 대한 규제 논의가 공정거래 이슈로 다뤄지고 있지만, 디자이너패션산업에 특화된 제도적 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유통 자율성이 창의성을 만든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 공급자’가 아니다. 브랜드는 하나의 서사를 구성하는 창작 주체이며, 유통은 그 서사가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통로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유통 구조는 서사를 유통사의 수익률 공식으로 변환하는 기능만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유통 자율성의 확보다. 브랜드가 자신의 전략과 가격, 노출 방식을 주도할 수 있는 시스템 없이는 창의성은 생존할 수 없다. 유통의 공정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책적 장치는 단순한 산업 진흥책이 아니라, 창의성과 다양성의 조건을 형성하는 문화정책이기도 하다.
플랫폼은 누구의 편인가
2025년의 디자이너패션산업은 더 이상 단순한 매출 성장으로 평가될 수 없다. 산업은 수치를 넘어 구조를 보아야 하며, 유통은 효율이 아니라 공정성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유통 플랫폼은 소비자에게는 편의일 수 있지만, 디자이너에게는 창의성과 권리를 제한하는 구조물이 될 수도 있다.
지금, 플랫폼은 누구의 편인가. 디자이너패션산업이 스스로 묻고, 정부와 정책이 응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