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Insight] 장인정신의 언어인가, 고급문화의 독백인가 – 보테가 베네타가 말하는 ‘문화’의 정치학
인트레치아토 50주년 캠페인을 통해 본 럭셔리 브랜드의 문화 수사 전략
[KtN 임우경기자] 1975년, 보테가 베네타는 얇은 가죽 띠를 교차로 엮어 만든 위빙 기법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를 처음 선보였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지역의 전통 공예에 기반한 이 방식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브랜드 정체성의 중심이 되었고, 오늘날 보테가 베네타를 대표하는 기호로 자리 잡았다.
2025년, 보테가 베네타는 이 기법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며 ‘Craft is our Language(공예는 우리의 언어)’라는 제목의 대규모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진작가 잭 데이비슨, 안무가 레니오 카클레아가 참여한 이번 기획에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줄리안 무어, 아이엔(Stray Kids), 자디 스미스, 다리오 아르젠토 등 글로벌 창작자들이 등장했다.
장면 중심의 서사, 감각 없는 공예
보테가 베네타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인트레치아토를 하나의 언어로 치환했다. 그러나 손의 감각으로 전해지는 기술을 이미지 중심의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예가 가진 물리성과 감각성은 오히려 희석됐다. 캠페인은 각 인물이 손을 통해 표현하는 정제된 제스처와 무표정한 시선을 통해 상징적 메시지를 구성했지만, ‘공예의 손맛’이 아닌, 브랜드 내부의 자기연출로 귀결됐다.
스트레이 키즈의 아이엔, 배우 줄리안 무어, 작가 자디 스미스, 지휘자 로렌초 비오티, 디자이너 에드워드 뷰캐넌 등은 각자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펼쳐온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이 보테가 베네타의 장인정신과 어떤 문화적 접점을 형성해왔는지에 대한 서사는 비어 있다. 다수의 참여자들이 상징 자본의 ‘얼굴’로 선택되었을 뿐, 캠페인 내에서 실질적인 공예의 맥락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고급 브랜드의 언어, 문화라는 단어의 과잉
보테가 베네타는 ‘공예는 우리의 언어’라는 문장을 통해 브랜드의 철학을 외부에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언어란 사용자가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언어가 된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감각의 공유, 실천의 확장, 참여의 공간이 모두 결여되어 있다.
브랜드가 말하는 ‘문화’는 소비자의 경험으로 전이되지 않는다. 장인정신은 소비자의 일상에서 체험 가능한 형태로 전환되지 않고, 고급 이미지의 기호로만 전시된다. 브랜드 북과 후속 캠페인이 예고된 상황이지만, 그것 역시 브랜드 내부 논리를 반복하는 구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보테가 베네타가 말하는 문화는 공예를 기호로 전환한 하나의 내러티브다. 문제는, 그 내러티브가 독립적인 문화가 아니라, 고급 브랜드의 자기 정당화를 위한 장치로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럭셔리 산업의 구조적 경향과 반복되는 전략
보테가 베네타의 전략은 최근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방식과 유사하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디올 등은 모두 ‘장인정신’, ‘예술’,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브랜드 내러티브에 끌어들이며, 고급문화를 구성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브랜드가 문화의 기표만 차용한 채 실질적인 문화 생산이나 공유의 구조는 형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고급문화의 감상자 혹은 관람자로 고정되고, 참여의 기회는 철저히 제한된다. 언어라기보다는 선언이며, 소통이라기보다는 연출이다.
문화의 이름을 빌린 고급 브랜드의 자기서사
인트레치아토 위빙은 분명 공예의 집약체다. 하지만 공예가 언어가 되려면, 그것은 소비자의 손끝으로도 전해질 수 있어야 한다. 보테가 베네타는 장인의 기술을 ‘문화의 언어’라고 명명했지만, 그 언어는 누구도 함께 말할 수 없는 독백으로 남아 있다.
럭셔리 산업이 문화의 언어를 사용할 때, 그 언어가 실제로 사회와 소통하고 확산될 수 있는지를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 보테가 베네타가 구성한 세계는 지나치게 정제되어 있으며, 지나치게 내부적이다.
문화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화는 타인의 경험을 전제로 하며, 감각의 공유를 통해 사회적 층위로 나아간다. 지금 보테가 베네타가 구축한 캠페인은 고급스럽지만 닫혀 있으며, 정교하지만 일방적이다. 언어처럼 보이지만, 그 언어는 여전히 번역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