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Insight①] 디올을 떠나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 여성주의 패션은 브랜드를 바꿨는가
[KtN 임우경기자]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가 지난 2025년 5월, 크루즈 2026 컬렉션을 끝으로 디올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공식 퇴임했다. 2016년부터 약 9년간 디올 여성복과 꾸뛰르를 총괄한 치우리는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석 디자이너로, 디올 내부에 페미니즘을 전략적으로 도입하고 소비한 상징적 인물로 남는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 이후의 디올
치우리의 2016년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We Should All Be Feminists’ 티셔츠는, 보수적 명품 하우스 내부에 정치적 언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이례적 사례였다.
이후 디올은 여성 작가, 무용가, 공예가 등과의 협업을 통해 메시지와 미학을 결합했으며, 여성 서사에 기반한 상품 기획과 꾸뛰르 라인의 상업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치우리 재임 기간 디올의 여성복 매출은 크게 성장했고, 감정적 연출력과 정치적 기획을 모두 갖춘 디렉터로 평가받았다.
상징은 구축됐지만, 구조는 얼마나 변했는가
치우리의 퇴임 이후, 디올의 후임으로 남성 디자이너 조너선 앤더슨(Jonathan Anderson)이 거론되고 있다. 디올이 다시 남성 리더십 체계로 회귀할 가능성을 보여주며, 지난 9년간 쌓아올린 ‘여성주의적 디올’의 체제가 브랜드 내부에 얼마나 제도화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치우리가 남긴 유산은 분명하지만, 그 체제가 디올의 경영 구조나 후속 세대 발굴 시스템까지 근본적으로 바꿨는지는 불투명하다.
젠더 감각은 마케팅 수단인가, 제도적 지향인가
LVMH 산하 하우스 다수와 마찬가지로, 디올 역시 정치적 메시지를 브랜드 스토리텔링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이 전략이 제품 서사에 국한될 경우, 구조적 진화가 아닌 형식적 연출로 남을 수 있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드레스가 존재해도, 그 드레스를 설계·승인·유통하는 경로가 기존 체계에 의해 관리된다면 변화는 외피에 머무른다.
구조를 남기지 못한 성취의 유산
치우리의 디올은 하나의 상징이었으나, 그 상징이 제도적 전환으로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향후 디올의 후임 디자이너 인선, 제품 기획 방향, 내부 인사 시스템 등이 어떤 흐름을 택하느냐에 따라 이번 퇴임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여성주의적 브랜드 전략은 특정 디자이너의 감각이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설계로 확장될 때에만 지속가능한 모델이 된다. 치우리가 남긴 결과는 성취로 충분하지만, 구조의 변화 없이 반복되는 순환은 결국 상징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