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A] 배우미의 ‘Lovely’, 감정이 머무는 형식, 사랑의 구조

'Lovely' – 사랑은 시선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배우미는 그 구조를 시각의 언어로 기록한다.”

2025-06-02     임민정 기자
 배우미 작가. 53×45.5 Lovely Acrylic on canvas. 사진=You & M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 사랑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응시의 구조이며 시각의 형식이다. 배우미는 감정을 재현하는 대신, 감정이 생성되는 조건을 회화로 설계한다.

작품 정보

제목: 'Lovely'

크기: 53×45.5cm

재료: 아크릴릭 온 캔버스

제작 연도: 2025년

 

'Lovely'는 감정을 단일한 이미지나 서사로 고정하지 않는다. 이 회화는 감정이 조형 요소의 리듬과 배치, 응시와 구조를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탐색하는 실험이자 선언이다. 작가는 감정이 언어가 되기 이전의 상태, 감정이 인물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하는 찰나를 회화적 공간에 조형 언어로 심는다.

배우미가 사용하는 인물은 모두 정서적 지시점으로 구성된다. 베티붑은 20세기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가장 상징적인 여성 캐릭터로, 당대의 성적 자율성과 강렬한 시선을 대표했다. 회화 속 베티붑은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감정의 단편으로 재구성된다. 눈동자, 속눈썹, 입술, 얼굴의 각기 다른 조각이 세 개의 분할된 프레임 안에 삽입되며, 감정은 분절된 채 흐른다.

캔버스 하단 좌측에 자리한 글로리아는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이자 감정의 매개체다. 글로리아는 베티붑을 응시한다. 이 응시는 단순한 감탄이나 동경이 아니라, 감정의 첫 구조이자 회화 전체의 조형적 질서를 결정짓는 시선의 기점이다. 감정은 타인을 향한 시선에서 출발하며, 배우미는 이 장면을 통해 감정의 시각적 발생 조건을 회화로 형상화한다.

감정을 설계하는 조형 전략

작품의 화면은 면분할 기법을 통해 구획된다. 정사각형, 곡선, 기호의 리듬 있는 배열은 감정이 고정된 이미지로 존재하지 않고, 유동적이고 분산된 구조 안에서 생성됨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면분할은 하나의 장면을 분할하고, 감정의 단위를 해체하며, 감정의 밀도를 높이는 구조다.

‘Lovely!!’, ‘Oh….!’라는 타이포그래피는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감정 자체의 리듬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한 장치다. 문자의 배열, 대소문자의 혼용, 음절의 강조는 감정의 억양을 시각화하며, 언어보다 빠른 정서의 진동을 만들어낸다.

베티붑의 얼굴은 세 개의 프레임에 나뉘어 삽입된다. 감정은 단일한 표정이나 심상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감정은 나뉘고, 움직이며, 중첩된다. 배우미는 감정을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여러 감정이 공존하고 충돌하며 교차하는 구조로 설정한다.

색과 질감 – 감정의 온도와 긴장

화면의 주조색인 붉은색은 단순한 로맨틱 이미지가 아니다. 이 색은 정서적 압력과 응축, 시각적 온도를 표현하며, 감정이 얼마나 밀도 있게 구성되는지를 시각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흰색과 붉은색의 반복적 분할은 감정 사이의 간극과 정서의 균열을 표현한다.

아크릴릭 특유의 매트한 질감은 감정의 결을 부드럽게 눌러주며, 선과 면, 도형과 기호는 감정의 조형적 촘촘함을 형성한다. 입술, 컵, 하트 등의 기호들은 상징이자 구조다. 입술은 말해지지 못한 감정, 컵은 감정을 담는 용기, 하트는 익숙하지만 다층적인 정서를 담는 기호로 작용한다.

배우미의 창작 철학과 이 작품의 위치

작가에게 감정은 단순한 정서적 경험이 아니다. 감정은 관계, 거리, 응시, 구조, 그리고 시간성의 복합적 흐름이며, 회화는 그 흐름을 형상화하는 언어이다. 배우미는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구성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는 감정의 조형화를 넘어 감정의 철학적 구성에 가까운 작업이다.

'Lovely'는 배우미의 창작 세계 안에서 감정의 구조적 성격을 가장 정제된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감정이 분위기나 상징으로 머물렀다면, 이 회화에서는 감정이 공간 안에서 설계되며, 구조화된다. 감정은 이제 조형의 논리로 작동한다.

관람자 경험과 감정의 반사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자는 글로리아의 시선을 따라 감정이 흐르는 방향을 체험하게 된다. 응시는 작품 밖의 누군가를 향하지만, 그 시선은 다시 관람자의 기억과 감정으로 반사된다. 과거의 사랑, 말하지 못한 감정, 혹은 관계 속 침묵이 이미지 안에서 조형적으로 소환된다.

이 회화는 정서를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가 생성되고 머무는 구조를 보여준다. 감정은 여기에 고정되지 않으며, 보는 이의 정서에 따라 재구성되고 확장된다. 회화는 더 이상 고정된 의미의 대상이 아니며, 감정과 감정 사이에 열린 구조로 기능한다.

'Lovely'는 감정을 설명하는 회화가 아니다. 감정이 존재하는 방식, 감정이 형성되는 리듬, 그리고 감정이 조형화되는 언어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배우미는 감정을 기억하지 않는다. 감정을 건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