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Insight①] 광주라는 섬, 연극이라는 항로... 극단 까치놀 40년의 자립과 문화정치의 기록

중앙집중형 문화체제에 맞선 지역 창작의 전략사

2025-06-12     임우경 기자
극단 까치놀은 창단 40주년을 맞아 기념공연. 극단 까치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1985년, 광주의 한 구도심 소극장에서 출발한 작은 극단이 있었다. 이름은 ‘까치놀’. 지원은 없었고 관객도 드물었지만, 단 한 해도 공연을 거른 적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이 흐른 2025년, 극단 까치놀은 창단 40주년을 맞아 기념공연 <꽃며느리>를 무대에 올리며 다시금 광주의 밤을 환히 밝혔다. 그러나 이 연극은 단지 기념의 무대가 아니다. 지역 예술이 자본과 제도, 미디어 소비의 파도 속에서도 어떻게 ‘자립’이라는 항로를 지켜왔는가를 되묻는 정치적 구조의 증거이자 기록이다.

극단 까치놀의 구조, 생존이 아닌 구조화의 전략

광주극단 까치놀은 중앙 문화정책이 여전히 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돼 있던 1980년대 중반, 광주의 한 소극장에서 출발했다. 공연예산, 관객 네트워크, 예술가 훈련 시스템 그 어느 것도 완비되지 않았던 시절, 극단은 소위 ‘문화적 자생력’이라는 개념조차 정의되지 않던 조건 속에서 극작과 연출, 기획과 홍보까지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40년의 시간을 견뎌왔다.

이영민 대표는 “학교 연극 동아리 출신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연극을 포기하지 않았던 시절의 생존 본능이 지금까지의 구조를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이러한 연속성은 ‘창작의 자립 시스템’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까치놀은 전국 연극제 대상, 광주연극제 수상 경력 등으로 대외적 성과를 쌓아왔지만, 단 한 번도 서울 대학로 중심의 극장 유통망에 편입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지역 내 문화기반이 빈약한 조건에서 관객, 예술가, 콘텐츠를 묶는 내발적 창작 구조를 만들어야 했던 필연이었다.

뮤지컬 ‘월드오브다크나이트’. 극단 까치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외부 자본의 부재가 만든 고유한 생태계

까치놀은 중앙정부나 대형 기업의 스폰서십 없이 연 1~2편의 창작극을 지속적으로 제작했다. ‘지원이 없는 예술’이라는 한국 공연예술계의 가장 불편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는 구조 실험이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4년 지역 공연예술단체 평균 지원금은 연 2,300만 원으로, 서울 소재 단체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까치놀은 2020년대 중반 기준으로도 외부 재원 의존도를 15% 미만으로 유지하며, 창작 극본 확보와 지역 리서치, 연출·배우 훈련, 무대 기술 개발 등을 독자적으로 수행해왔다.

이러한 구조는 ‘독립’이라는 미덕보다는, 공공예산 배분의 수도권 편중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극단이 지역 정체성을 유지한 채 고유 창작 모델을 형성한 것은 ‘부재의 조건’을 오히려 문화적 독립성으로 전환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지역성과 역사성 – 무대는 기록의 장소였다

까치놀은 매년 자체 기획극을 무대에 올려왔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연속적 성취는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서사 구조의 확립이다.

2009년~2012년 공연된 <아버지>, <월드 오브 다크 나이트>, <하카나>는 광주연극제와 전국연극제에서 수상하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고, 2012년의 <꿈꾸는 해바라기>와 2016년 일본 삿포로 극장제 초청작 <동화의 관>은 지역 기반 서사가 국제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특히 광산구 출신의 시인 박용철, 천문학자 류방택, 여류시인 이매창, 의병장 고경명 등 역사적 인물을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무대 위의 지역기억’이라는 개념을 공고히 했다.

이러한 콘텐츠 전략은 지역 콘텐츠 진흥의 일환이 아니라, 지역민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존감을 무대 언어로 복원한 시도였고, 공연을 단순한 소비물이 아닌 문화-역사적 문서로 기능하게 했다.

연극 ‘천문’.  극단 까치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자치’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여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부터 ‘지속 가능한 지역문화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전략을 발표했지만, 실질적인 권한과 예산의 지방 이양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광주문화재단의 ‘2024 지역 문화자치 인프라 조사’에 따르면, 지역 예술단체의 73%가 “문화예산의 중앙 통제성을 체감한다”고 응답했으며, 실제로 기획자·무대기술자·홍보인력 등 창작 외 인프라의 지속성은 지역 단체의 구조적 취약지대다.

까치놀의 40년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문화자치의 실천’이라는 상징성을 띤다. 문화자치가 단순히 지자체 단위의 예산 운용이 아니라, 창작 기획의 기초부터 유통, 관객 교육, 지역 스토리의 내발적 서사화까지 포괄할 때 비로소 실현 가능한 구조임을 까치놀은 증명해왔다.

까치놀의 40년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문화자치의 실천’이라는 상징성을 띤다. 극단 까치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제 비교 – 지역 공연 생태계는 어떻게 존속하는가

까치놀는 국제적으로도 그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Frantic Assembly, 독일의 Theater Freiburg 등은 소규모 창작 집단이 지역 내 대학·미디어·지자체와 협력해 공연 콘텐츠를 제작하고, 로컬과 인터내셔널의 연결 지점을 확장해왔다.

이들은 공공지원보다 지역 파트너십(community partnership) 구조를 기반으로 창작과 인재 육성을 병행해왔으며, 단기 흥행 대신 지역 정체성 중심의 장기 프로젝트로 운영되고 있다.

까치놀 또한 서울과의 예속적 관계가 아니라, 지역 내 상호연결된 인프라망을 자율적으로 형성함으로써 유사한 구조를 형성했다. 이러한 모델은 단순히 ‘성공적인 지역 사례’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문화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내포한다.

연극 ‘공예태후’.  극단 까치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까치놀은 문화정치의 가장 정직한 결과다

극단 까치놀의 40년은 공연예술의 기록이자, 한국 문화정치가 지역을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직한 증거다. 중앙 집중형 유통 구조, 플랫폼 기반 소비 시스템, 공공 예산의 불균형이라는 3중 구조 속에서도, 까치놀은 예술이 지역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진화하는지를 증명해왔다.

‘섬’은 까치놀의 연극 속에서 은유로 작동하지만, 동시에 광주라는 도시의 문화적 조건을 상징한다. 고립은 단절이 아니라 예술적 저항의 형식이었고, 자립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창작 생태계의 구조화를 의미했다. 이 구조는, 다음 세대가 지역에서 예술을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실천적 대안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