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④] 수사절차법은 왜 필요한가 – 형사사법체계의 투명성 재설계
‘수사 블랙박스’는 어떻게 법률의 사각지대가 되었는가
[KtN 최기형기자] 대한민국에서 수사는 형사사법체계의 가장 강력한 권력작용 중 하나다. 그러나 수사는 지금까지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 부처 지침, 내부 규칙에 의해 운용돼 왔다. 형사소송법은 수사를 재판의 부속 과정으로 간주하고, 국민의 권리는 수사 현장에서 철저히 비가시화된 채 침해당해 왔다.
수사는 공권력의 최전선이다. 하지만 그 절차는 시민에게 불투명했고, 피의자와 피해자는 물론 변호인조차 절차적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는 구조였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 같은 수사 블랙박스를 법률로 해체하고, 수사권력을 법률 안에 완전히 넣기 위한 「수사절차법」의 제정을 제안했다.
블랙박스의 기원 – 형사소송법의 한계와 관습적 수사실무
현행 형사소송법은 일제 강점기 형사사법체계를 기초로 하고 있다. 수사는 ‘공소제기 전의 절차’로만 간주되며, 재판 중심의 제도 설계가 적용된다. 수사에 관한 규율은 대부분 대통령령 또는 검찰청·경찰청 내부 지침에 맡겨졌고, 그 결과 수사는 법정 질서 밖의 권력이 되어 왔다.
예컨대 2020년 문재인 정부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이라는 대통령령을 제정해 수사권 조정의 절차를 규정했지만, 이 역시 검사의 우위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법률적 강제력이나 시민의 접근 가능성이 극히 제한적이다.
기본원칙의 부재 – 수사 과정에서 인권은 후순위였다
가장 큰 문제는 수사 절차에 관한 ‘기본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은 각자 실무에 따라 절차를 운용하며, 피의자와 변호인, 피해자조차 자기 권리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이는 수사의 비례성, 강제수사 최소화, 자백강요 금지 등 국제 기준과도 현격히 어긋나는 상황이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수사절차법」 도입 시 다음과 같은 수사 기본원칙의 법제화를 제안했다.
비례성 원칙: 수사의 강도와 침해는 범죄의 중대성과 비례해야 한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 구속수사는 예외적 수단이어야 하며, 원칙은 불구속이다.
조사권 남용 금지 및 인권보장 원칙: 조사 과정에서 물리적·정서적 강압, 자백 강요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절차 규정을 법률로 명시.
강제수사의 최후수단화: 압수·수색·체포 등 강제수사는 반드시 최소화되어야 하며, 대체수단이 없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
기록·목록 작성의무: 수사의 모든 절차는 투명하게 문서화되고, 기록은 당사자와 변호인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수사절차의 법률화 – 시행령과 내부 규정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현재 검찰청, 경찰청, 법무부, 행정안전부 등은 각 기관별로 비공개 수사규칙과 지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규정은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수사기관 내부 자율권이라는 명목 하에 권력 남용의 기반이 되어왔다.
「수사절차법」은 이와 같은 시행령·내부 규정 체계를 법률 중심으로 통합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규율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법적 틀이다.
단, 참여연대와 민변은 기존의 내부 규정을 그대로 법제화하는 접근에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기존 관행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오히려 탈법적 수사실무를 공인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률은 수사의 정당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인권보장의 원칙을 다시 그려야 한다.
디지털 수사와 감시형 수사 – 미래 환경에 대한 규율도 포함돼야
수사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 사이버 수사, 위치추적, SNS 감시 등 기술 기반의 수사 방식은 개인정보 침해와 감시사회의 위험을 동시에 내포한다. 이 영역은 특히 법적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수사절차법」은 이러한 기술 수사에 대한 적법절차 원칙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특히 압수·수색영장에 대한 사전심문제 도입은 법관이 제3자의 주장을 직접 청취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하며, 제보자의 보호 장치와 정보 비공개 요건 등을 정교하게 규정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수사절차법의 제정은 형사사법체계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단순한 절차 개정이 아니라, 수사라는 권력 행위를 헌법적 통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제도화 작업이다.
검찰개혁의 보완책일 뿐 아니라, 수사기관이 어떤 정권 아래서도 자의적 권력 행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구조적 사실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 형식적 권한 조정보다는 내용적 투명성 확보가 중요한 시대다. 수사는 더 이상 비공개된 실무가 아니라, 법률이 정한 공적 절차여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시민 중심의 권력 개편을 지향한다면, 「수사절차법」 제정은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과제다. 수사의 법제화는 권력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헌법으로 재배분하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