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Insight⑤] 침묵을 설계한 연출, 감정을 비워낸 구조
연출 이영민이 완성한 ‘꽃며느리’의 정지된 리얼리즘
[KtN 임우경기자] 극단 까치놀의 40주년 기념작 꽃며느리는 말보다 침묵이, 갈등보다 간극이 무대 위를 지배했다. 연출 이영민은 “정서와 구조가 분리된 무대”라는 개념으로 이 작품을 풀어냈다.
이번 연출은 서사를 제거하거나 생략하지 않았다. 대신 대사와 동선, 조명과 정적을 모두 '감정의 생략'이라는 단일한 구조 안에서 배열했다. 중심을 만들지 않았고, 중심 없이 작동하는 긴장 구조가 공연 전체를 끌고 갔다.
연출가 이영민은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대신, 감정을 구성할 수 있는 틈을 설계했다. 엄니 역을 맡은 강원미 배우는 대부분 무대의 외곽에 머물렀고, 중심에 선 인물은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감정은 드러나지 않았고, 시선은 명확하게 마주하지 않았다. 둘째아들 역의 이환의와 정애 역의 이유진이 나누는 장면에서는 응시조차 발생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인물들, 움직이지 않는 공간,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 장면. 이영민은 이를 연극의 핵심 언어로 삼았다. 무대에 오르지 않은 서사, 말해지지 않은 관계, 보여지지 않은 분노가 오히려 공연을 구성했다. 연출자는 "관객의 해석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조명은 인물보다 구조를 따라 움직였다. 순경 역을 맡은 강태호 배우가 서 있는 출입구에 강한 조명이 집중되었고, 양금네 역의 이현숙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음향보다 침묵이 긴장을 이끌었다. 연출 이영민은 말의 강도를 높이기보다, 말이 사라지는 시간을 확장시켰다.
셋째아들 김장준이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연출의 정점이었다. 조명이 꺼지고, 무대는 정지한 채 열려 있었다. 등장인물의 선택은 설명되지 않았고, 연극은 서사의 마침표가 아니라 정서의 공백을 남긴 채 종료되었다.
이번 작업은 극단 까치놀 내부에서의 연극 언어 전환을 의미한다. 1980년대 이후 현실참여적 리얼리즘으로 연극을 지속해온 까치놀은, 이번 작품을 통해 직접적 서사 대신 구조적 긴장을 앞세운 미니멀리즘 연출로 전환했다. 연출가 이영민은 이 과정에서 ‘비워냄’의 전략을 명확히 제시했다.
무대는 말하지 않음으로 충만했고, 중심은 제거되었으며, 인물들은 침묵 속에서 서로를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꽃며느리는 말로 구성된 드라마가 아니라, 말이 생략된 구조가 관객의 해석을 요청하는 연극이었다. 까치놀의 40년은 이 연출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