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Insight⑦] 떠날 수 없는 책임, 고립된 윤리의 분열

심성일 배우가 구현한 ‘큰아들’의 균열 구조

2025-06-23     임우경 기자
배우 심성일이 연기한 '큰아들'은 섬의 공동체와 가부장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중심으로 작동하지만, 현실의 균열과 무력한 책임 사이에서 가장 먼저 ‘버티는’ 존재로 서게 된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극단 까치놀의 40주년 기념공연 작품 <꽃며느리>에서 가장 먼저 무대의 중심에 선 남성 인물은 ‘큰아들’이다. 이 인물은 섬의 공동체와 가부장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중심으로 작동하지만, 현실의 균열과 무력한 책임 사이에서 가장 먼저 ‘버티는’ 존재로 서게 된다. 배우 심성일이 연기한 큰아들은, 단순한 도덕적 인물이나 ‘희생적인 장남’의 전형을 넘어서, 가부장 체계 자체의 피로와 고립을 감당하는 내면적 압축체로 기능한다.

배우 심성일은 큰아들을 연기하며 “가장 현실적이지만 가장 이상에 가까운 선택을 계속 고민하는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극 중 큰아들은 가족의 해체를 지연시키려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변화의 물결은 점점 섬을 잠식하고, 그 중심에 있는 큰아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립된 책임’을 짊어진다.

심성일 배우는 이러한 내적 분열을 정형화된 감정 표현이 아닌, 말의 억제와 시선의 고정, 체념의 톤으로 구축했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영민 연출이 설계한 인물 구도에서 큰아들은 고전적 가부장 모델과 현실적 생존 구조가 충돌하는 접점에 위치해 있다. 섬을 떠나야 살 수 있지만, 남아 있어야 가족의 마지막 형식을 유지할 수 있다. 심성일 배우는 이러한 내적 분열을 정형화된 감정 표현이 아닌, 말의 억제와 시선의 고정, 체념의 톤으로 구축했다.

<꽃며느리>의 공간이 정서적 파동이 아닌 ‘구조적 정지’를 중심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에, 큰아들의 모든 선택은 감정보다는 구조 속 위치의 이동으로 읽혀야 한다. 이영민 연출은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 가장 이상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큰아들은 가장 고통스럽다”고 설명한 바 있다. 큰아들의 고통은 감정적 절규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점점 무너지는 윤리의 구조다.

큰아들의 고통은 감정적 절규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점점 무너지는 윤리의 구조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심성일 배우는 이 고통을 ‘윤리의 파편화’로 연기했다. 책임의 이름으로 유지하는 가족, 변화 앞에서 작동하지 않는 도덕, 감정을 눌러가며 버티는 일상의 긴장을 배우는 몸 안에서 구현했다. 말하지 않는 대신, ‘존재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밀도 있게 쌓아가는 연기 전략은 <꽃며느리>의 연출 철학과도 깊이 호응한다.

큰아들은 떠날 수 없는 존재이자, 떠나야 하는 존재다. 이중적 서사의 구조 안에서 심성일 배우는 감정이 아니라 무게를 연기했다. 그 무게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지탱하던 마지막 질서가 무너질 때, ‘가장’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꽃며느리>의 큰아들은 이상이 아니라 무력한 윤리의 흔적이고, 심성일 배우는 그 잔해를 말 없이 감내하는 방식으로 관객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