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Focus⑤] 심성일 연극은 낭만이었다
배우 심성일이 말하는 40년 연극사와 ‘꽃며느리’의 귀환
[KtN 임우경기자] 광주 충장로 한복판에서 밤을 새워 포스터를 붙이던 고등학생들이 이제는 중견 배우로, 연출가로, 기술감독으로 돌아왔다. 극단 까치놀의 창단 멤버이자 <꽃며느리>에서 큰아들 역을 맡은 심성일은 그 시간의 흐름을 정면으로 마주해왔다. “연극은 낭만이었다.” 창단 40주년 공연 무대를 마주하며 건넨 이 한 마디는 단순한 회고가 아닌, 연극과 공동체에 대한 진심이었다.
40년 연극사, 출발은 한 장의 포스터에서
심성일의 연극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학교 축제를 위한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15명으로 출발했던 연극부는 여름방학이 끝나자 5명만 남았다. 그 5명이 축제 무대를 올렸다. 이후 구청에 극단 등록을 하며 정식 극단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홍보는 포스터를 직접 붙이는 방식이었죠. 밤마다 풀을 써서 충장로와 금남로에 벽보를 붙였고, 중간에 모여 포장마차에서 잔술 한 잔으로 수고를 나눴어요. 낭만이 있었던 시절이죠.”라고 심성일 배우는 회상했다.
극단 까치놀은 1980년대 중후반의 연극 동아리들이 겪었던 폭력적 문화와는 무관한 구조였다. 강요가 아닌 ‘하고 싶은 마음’이 중심에 있었고, 그 열정이 40년을 이끌어왔다. 심성일은 이 공동체의 지속성을 “전우애”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꽃며느리'의 귀환 – 트렌드와 공감의 지점
이번 <꽃며느리> 공연은 까치놀 40주년을 기념하는 세 번째 무대다. 초연 당시에는 스태프로 참여했고, 두 번째 공연에서는 무대 세트와 조명을 맡았다. 이번에는 배우로 무대에 큰아들 역으로 섰다.
심성일 배우는 “이번 공연이 배우로는 처음이지만, <꽃며느리>는 오랫동안 함께했던 작품입니다.”라고 말했다.
<꽃며느리>는 어렵지 않은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섬에 살던 홀어머니와 세 아들 사이에, 외지에서 온 젊은 여인이 들어오며 벌어지는 정서적 충돌과 관계의 변화. 누구나 경험했거나 상상 가능한 서사가 짧고 단단한 호흡으로 펼쳐진다.
“관객이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연극입니다. ‘지금 저 장면이 무슨 의미일까’ 같은 질문을 억지로 유도하지 않아요. 쉽게 보고, 쉽게 이해하고, 가볍게 나올 수 있는 무대. 요즘 관객들이 원하는 방향이죠.”
현대 연극의 트렌드 변화에 대해 심성일은 구조적인 흐름을 명확히 짚었다. 리얼리즘, 서사극, 부조리극 등 전통적 정극에서 점차 뮤지컬과 로맨틱 코미디 등 대중적 장르로 이동하고 있으며, <꽃며느리>는 이 흐름에 유연하게 위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무대로의 귀환, 예술가의 내면 풍경
심성일에게 연극은 기술직이기도 했다. 무대조명, 세트, 조연출을 오래 맡았다. 배우로 돌아올 수 있었던 전환점은 <검정 고무신> 작품 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시절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었죠. 배우로서 다시 설 수 있게 해준 작품이 <검정 고무신>입니다.”
한 명의 연극인이자 예술가로서, 심성일은 한국 공연 예술의 세계적 성장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뮤지컬이든 영화든, 결국 연극에서 파생된 장르입니다. 해외 무대에서 우리의 정서가 인정받는 것을 보면 정말 벅찹니다.”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이어지는 전통
극단 까치놀은 같은 사람들만이 이어온 구조가 아니다. 연극을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이들이 있다. “젊었을 땐 자기 삶을 살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연극을 찾게 돼요. 귀소 본능 같은 거죠. 예전이 그리운 마음.”
심성일은 오늘의 공연을 함께하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마음도 전했다. “그 시절 함께했던 분들이 어디에 계시든, 어떤 삶을 살든, 만족하고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함께한 시간이 정말 소중했어요.”
40주년 이후, 무대 위의 책임을 잇다
극단 까치놀의 40주년 공연 <꽃며느리>는 단지 과거의 복원이 아니다. 새로운 전환점이다. 창단부터 지금까지 공동체의 내면과 외곽을 함께 지켜온 심성일은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극단 까치놀의 대표직을 이어받았다.
이제 심성일은 배우로서 무대 위에 설 뿐 아니라, 까치놀의 다음 40년을 이끌어갈 책임을 함께 지게 된다. 연극의 낭만과 공동체의 윤리를 지켜온 시간은, 곧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예술적 전통의 토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