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Animation Insight③] 수출을 넘어 공동제작으로: 중국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전략 전환
단일 수출 모델에서 ‘글로벌 공동제작’으로의 구조 전환
[KtN 김동희기자] 2025년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더 이상 ‘완성작 수출’을 핵심 전략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다국적 공동제작과 플랫폼 동시 배급을 통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CICAF 2025에서 발표된 다수 프로젝트들은 중국 내수 시장을 넘어선 기획 구조, 제작 기술, 유통 플랫폼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공급국가’가 아닌 ‘기획 파트너 국가’로의 정체성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중국 콘텐츠 산업동향 2025년 8호』는 이 같은 전략적 변화를 "애니메이션의 국가 주도 수출 정책에서 민간 중심 글로벌 동반 성장 모델로의 이행"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빌리빌리와 텐센트비디오가 일본 애니플렉스, 프랑스 지망(ZIMA) 스튜디오, 넷플릭스 싱가포르 제작 법인 등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아시아·유럽·동남아를 잇는 다극형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콘텐츠 ‘기획 국적’을 흐리는 다국적 프로젝트 전략
중국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전략은 ‘제작국가’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예컨대 2025년 CICAF에서 첫 공개된 <철변영웅 X>는 빌리빌리와 일본 애니플렉스가 공동 제작하고,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한 동남아 팀이 디자인과 사운드 후반작업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는 넷플릭스를 포함한 5개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 동시 공개되며, 개별 국가에서 로컬 IP로 인식되도록 현지 마케팅 전략까지 사전에 설계되었다.
이러한 전략은 미국 헐리우드가 주도한 '글로벌 블록버스터' 모델과는 명확히 다르다. 주도권은 특정 국적의 스튜디오가 아닌, 플랫폼·기획자·IP 자산·기술 파트너로 분산된다. 결과적으로 중국 제작사가 자국 색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수익과 영향력은 확보하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IP 수익의 다국적 분할, 플랫폼 연동형 확산 전략
공동제작의 또 다른 핵심은 'IP 수익의 분할 구조'이다. 빌리빌리와 유쿠는 플랫폼별 독점권이 아닌, 배급권과 2차 저작권, 지역별 상표 등록을 다르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해외 파트너와의 협업을 정교화하고 있다. 텐센트비디오는 글로벌 모바일 게임 제작사와 협력하여 애니메이션 IP 기반의 RPG 게임을 동시 개발하고, 유통권은 현지 퍼블리셔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콘텐츠의 파생 수익 구조를 복합화했다.
특히 플랫폼 연동형 확산 전략은 한국 기업에도 구조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단일 콘텐츠의 글로벌 배급이 아니라, 국가별 플랫폼 환경과 정책 리스크를 고려한 맞춤형 배급과 수익 모델 설계가 요구되고 있다. 콘텐츠 그 자체보다 콘텐츠가 움직이는 ‘수익 생태계’의 설계가 전략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 리스크를 넘어서기 위한 ‘탈중국’ 전략
중국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전략은 자국 제작 환경의 검열과 정치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현실적 동기도 내포한다. 2023년부터 강화된 콘텐츠 심의 제도와 ‘사상 안정성’ 기준은 민간 제작사의 창작 자유를 제약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제작사가 기획 단계를 아예 해외 법인에서 시작하는 ‘탈중국 기획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국가 문화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동시에, 플랫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신자유주의적 콘텐츠 구조가 중국 내부의 제한을 역으로 활용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빌리빌리, 유쿠, 텐센트는 각각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콘텐츠 기획 전담 법인을 운영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비중국 제작’이라는 인식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 산업에 대한 시사점
중국의 글로벌 전략은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복합적 함의를 제공한다. 첫째, 완성작을 수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획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파트너를 포함시키는 ‘협업 기반 산업 설계’가 필수적이다. 둘째, 정치·문화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는 다국적 기획·배급 구조를 사전에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플랫폼과의 전략적 제휴와 계약 구조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셋째, 한국 애니메이션 IP가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 캐릭터 중심 스토리텔링을 넘어, 세계관과 게임·라이선싱·굿즈로 이어지는 종합적 IP 설계가 필요하다. 중국의 다국적 공동제작 전략은 단순한 외연 확장이 아니라, 플랫폼 자본과 기술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 구조적 전환의 실험이자 성과이다.
2025년 중국 애니메이션은 이제 하나의 국적이 아닌, 다수의 산업 주체와 문화 권역이 협업하는 복합적 글로벌 프로젝트로 진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곧,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다음 10년을 좌우할 질서 재편의 신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