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anced Nation Insight⑤] 직접정치의 재설계 – 발안, 소환, 투표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정치는 대표를 넘어, 시민의 권력으로 작동해야 한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현은 불가능한 현실

2025-06-27     최기형 기자
주민발안·주민소환·주민투표는 지방자치법과 관련 개별 법률에 명시된 제도다. .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 주민발안·주민소환·주민투표는 지방자치법과 관련 개별 법률에 명시된 제도다. 그러나 실제로 작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요건은 까다롭고, 절차는 복잡하며, 결과는 대부분 ‘정치적 해프닝’ 수준으로 전락한다. 이 제도들이 사실상 정치 엘리트에 대한 시민 통제 수단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한다.

주민발안은 단 한 번도 실현된 사례가 없으며, 주민소환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민투표 역시 중앙정부의 동의와 보류권한 아래 있으며, 실질적 정치 행위로 기능하지 못한다. 제도의 외형과 실질 간 괴리가 민주주의의 내면화를 가로막고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자치분권의 필수조건

지방정부가 ‘지방정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치조례나 예산 집행 이상의 권한이 필요하다. 시민이 스스로 법안을 제안하고, 선출권력을 중간에 평가하며, 지역 현안에 대한 정책적 결정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지방정부의 입법·행정·정치적 정당성을 시민이 직접 구축하는 방식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단지 ‘행정청’으로 인식될 경우, 주민은 서비스 수혜자로만 남게 된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시민이 정치의 주체로 기능할 때, 지방자치는 정치의 단위가 된다. 이는 단지 참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체계 전반의 구조적 민주화를 위한 핵심 조건이다.

실효성 없는 제도, 설계 전면 재검토 필요

현행 주민발안제는 발안 요건으로 유권자의 5% 이상 서명을 요구하며, 이는 대규모 도시 기준 수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서명 검증, 청구 요건 심사, 지방의회 회부까지 절차가 길고 복잡하다. 주민소환제도 역시 서명 요건(15~20%)과 투표율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실질적으로 실행이 어렵다.

제도가 실현되기 어려운 구조로 설계된 것은 결국 시민의 정치 참여를 제도적으로 억제한 결과이며, 이는 분권 구조의 허약한 정치 기반을 보여준다. 제도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요건 간소화, 전자서명과 디지털 플랫폼 도입, 주민투표의 사전 동의권 폐지 등 구조적 개편이 불가피하다.

디지털 기술을 통한 직접정치의 일상화 전략

최근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전자발안 시스템, 디지털 투표 플랫폼, 시민심의단 제도를 통해 직접민주주의의 일상화를 시도하고 있다. 핀란드는 ‘국민이 제안하는 법률’을 공식 입법경로에 통합했으며, 스위스는 주민투표를 상시 운영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운용 중이다.

이재명 정부는 주민발안·주민소환 디지털 플랫폼 구축, 시민심의단 연계 숙의제도, 주민투표 자동화 시스템 등을 통해 직접정치의 제도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지방정치의 대표성 한계를 시민권력으로 재설계하는 민주주의 전략이다.

시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지방정부도 진짜 ‘정부’다

주권의 실질적 행사 가능성이 없는 정치 구조는, 민주주의를 형식으로만 보장할 뿐이다. 지방정부가 행정주체를 넘어 정치주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직접 정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지방분권이 제도의 완결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성숙으로 이어지기 위한 경로이기도 하다.

‘발안-소환-투표’는 단순한 참여 도구가 아니라, 시민이 지방정부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정치적 언어다. 정치가 대표를 넘어 권력의 공유로 나아가려면, 직접정치의 실효성 확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