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um Tech Insight⑥] 양자는 부품이 아니라 공급망이다
양자기술의 주도권은 부품 경쟁이 아니라 제조 생태계의 지배에서 결정된다.
[KtN 박준식기자] 양자컴퓨팅이 기술을 넘어 산업 전략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핵심은 알고리즘이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물리적 제조공정, 소자 조달, 칩 설계, 저온시스템 등 하드웨어 기반 공급망이다. 양자기술은 더 이상 연구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과 산업 정책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 반도체-양자-인공지능 삼각축 통합 전략 가동
미국 정부는 2022년 「CHIPS and Science Act」를 통해 반도체 제조지원과 함께 양자기술 R&D에 153억 달러(2025년 기준 누적예산)를 투입하고 있다. 백악관 국가양자이니셔티브(NQI)는 양자칩 설계부터 극저온 냉각 시스템, 진공패키징 기술까지 통합 지원하며, 양자기술을 반도체·AI 산업과 동시 연계하는 삼각축 전략을 본격화했다.
IBM, Google, Intel, Rigetti 등 주요 기술기업은 큐비트 수보다 더 정밀한 ‘소자 안정성’ 확보를 위해 희귀 금속 공급망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미국 에너지부(DOE)는 초전도체, 포토닉 칩, 이온트랩 기술을 중심으로 양자소자 표준화 컨소시엄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 양자 하드웨어 국산화에 100억 달러 이상 투입
중국 정부는 ‘14차 5개년 계획(2021~2025)’을 통해 양자과학 및 기술 응용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베이징 양자정보과학연구소는 2025년까지 국산 초전도 소자 1만 개 양산체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국가집적회로펀드는 양자소자용 반도체 공정라인 투자를 확장 중이다.
특히 중국은 희토류·초전도재료·저온냉각 기술에서 자국 공급망 비중을 70% 이상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는 미국과의 기술 디커플링 국면에서 핵심 자립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
유럽은 ‘민간-국가-규범’ 삼중 분산 전략 구사
유럽연합은 양자기술을 단일시장 내 전략기술로 지정하고, 독일·프랑스·핀란드 중심의 유럽양자플래그십(European Quantum Flagship)을 통해 공급망 분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의 Pasqal, 핀란드의 IQM, 독일의 Q.ANT 등은 큐비트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유럽연합은 기술 방식보다 생산 생태계와 인증 체계 표준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유럽은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민간 중심의 기술 독립성과 공공 중심의 데이터 규범, 그리고 대륙 간 연합 공급망 구축이라는 삼중 구조를 통해 양자기술 자립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ISO·IEC와 같은 국제표준기구에서의 인증 규칙 설계에도 주도적으로 참여 중이다.
한국, 부품 중심 접근에서 생태계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국은 양자기술 개발 예산과 인력 투자는 확대되고 있으나, 소자 설계·공정 장비·냉각 시스템·신소재 등 핵심 부문에서 해외 공급망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2025년 기준 양자컴퓨팅 관련 부품의 국산화율은 10% 미만으로 추정되며, 양자소자 시제품 대부분은 해외에서 역설계된 부품 기반으로 조립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각각 「양자산업 육성전략」과 「양자기술 국가로드맵」을 통해 정책 추진 체계를 수립했으나, 부처 간 연계 부족과 수직적 지원방식이 산업화 속도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중소 제조기업을 포함한 공급망 연계 전략이 부재해, 전체 생태계 관점에서의 정책 조정력이 약한 상태다.
양자는 기술이 아니라 산업이다
양자기술은 더 이상 실험실의 연구대상이 아니다. 양자컴퓨팅을 포함한 양자산업의 경쟁력은 큐비트 수나 계산속도가 아니라, 소자·재료·시스템·공정 등 산업적 연쇄구조 속에서 결정된다. 선도국은 이미 ‘기술’이 아니라 ‘공급망’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한국은 부품 국산화에 집중하는 방식을 넘어서야 한다. 양자 하드웨어 설계에서 공정 장비, 공급 기업, 표준 인증까지 연결하는 생태계 중심 전략이 필요하다. 양자산업은 더 이상 개별 기술의 조립이 아니라, 국가 공급망 역량의 집합적 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