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산업④] 유럽·일본의 '기술동맹' 전환… 이재명 정부, 반도체 외교로 산업주권 세운다

2025-07-13     박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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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채빈기자] 인공지능 반도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산업 질서 속에서, 유럽연합(EU)과 일본이 기술 자립을 넘어 전략적 기술동맹 형성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과의 기술 블록 결속이 강화되는 동시에, 반도체 주권 확보를 위한 독자적 투자 및 법제화 움직임도 병행되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축이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유럽연합은 2022년 ‘유럽 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을 제정한 이후, 인프라와 기술 양면에서 반도체 내재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20%를 유럽 내에서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430억 유로(약 60조 원)에 달하는 공공·민간 자금을 집행 중이다. 독일 드레스덴에는 인텔과 TSMC가 공동으로 차세대 반도체 공장을 신설 중이며, 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 등도 R&D 클러스터 유치에 뛰어들며 ‘유럽판 반도체 삼각축’ 구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부활’을 국가적 의제로 상정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2024년부터 총 3조 엔(약 28조 원)을 투입해 첨단 반도체 기술 확보와 생산역량 복원을 본격화했다. 일본 정부는 구마모토현에 미국 IBM·AMD, 대만 TSMC와 공동 설립한 첨단 공장 ‘JASM(재팬 어드밴스트 세미컨덕터 매뉴팩처링)’을 중심으로, 장비·소재·인력 육성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라피더스’를 통해 2nm 이하 선단공정 기술 확보에 나서며, 세계 반도체 기술경쟁에서 재입지를 꾀하고 있다. 도쿄는 이미 미국과 공동으로 차세대 AI 반도체와 포토닉스, 고속통신용 칩 관련 기술협정을 체결했고, EU 및 한국과의 기술 공유 확대도 논의 중이다.

이 같은 유럽·일본의 움직임은 반도체 산업이 단순한 경제 부문을 넘어 외교·안보와 직결된 전략 자산임을 반영한다. 기술의 블록화는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동맹 국가 간 기술 공유와 투자 연계를 통한 ‘지정학적 산업 안전판’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국제 동향 속에서 ‘기술외교’를 핵심 국정 어젠다로 삼고, 반도체 산업의 전략적 위상을 외교 정책과 통합해나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25년 상반기 ‘반도체 외교전략 로드맵’을 발표하고, 미국·대만·일본과의 기술공조를 1차 협력축으로 설정했다. 특히 ‘K-칩 동맹’ 구상 아래, 한국이 메모리 중심에서 시스템 반도체와 첨단 설계 생태계까지 외연을 넓힐 수 있도록 국제 R&D 공동 플랫폼을 추진 중이다.

이재명 정부는 유럽연합과의 기술연합도 강화하고 있다. 벨기에 IMEC과의 협력 확대, 독일·프랑스 반도체 기업과의 인력 교류 확대, 그리고 EU 반도체 공동기술개발 기금에의 참여 등은 그 구체적인 실천 사례다. 나노기술, 저전력 칩, 고신뢰성 반도체 기술 등에서 협력 틀을 마련하며,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 다변성과 국제 경쟁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기술외교’는 단지 공급망 안정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를 포함한 전략기술 분야 전반에서 외교 역량을 산업정책과 통합해, 세계 기술 규범 설정과 생태계 설계 단계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이는 기술 주권을 지키는 ‘산업 안보’의 차원을 넘어, 미래 성장동력의 국제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외교적 전환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이제 생산량을 넘어서 생태계 설계, 기술 규범, 외교적 연대의 다층적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기술자립과 국제 동맹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추구하며, 생존 전략을 정밀하게 조율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기술외교가 이 흐름에 발맞춰 국제적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부품 공급국’에서 ‘산업 설계국’으로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