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리포트⑦] 빌리 아일리시와 벤슨 분, 고요와 격정 사이에 구축한 Z세대 정서 지도
[KtN 신미희기자] 12일자 빌보드 핫100 차트에는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Birds of a Feather’(15위)와 벤슨 분(Benson Boone)의 ‘Beautiful Things’(11위), ‘Mystical Magical’(17위), ‘Sorry I'm Here For Someone Else’(22위) 등 다수 곡이 나란히 포진해 있다. 빌리 아일리시와 벤슨 분은 서로 다른 음악적 색깔을 지녔지만, 2020년대 후반 미국 청중의 감정 지형 안에서 핵심적인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두 아티스트는 Z세대 이후 세대의 정서적 불안과 자의식, 자존감의 출렁임을 중심에 둔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빌리 아일리시와 벤슨 분은 감정의 과시보다 감정의 리듬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대중과의 접속을 시도하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는 ‘Birds of a Feather’를 통해 관계의 상실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상상력의 잔존을 탐색했다. 빌리 아일리시는 절제된 멜로디와 낮은 볼륨의 보컬을 통해, 청중의 감정 안쪽으로 천천히 침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빌리 아일리시는 ‘Birds of a Feather’에서 반복적인 구조 없이 서사를 열고 닫으며, 곡 전체를 하나의 내면 독백처럼 구성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빌리 아일리시는 청중에게 해석이 아니라 ‘함께 머무름’을 요구했고, 이는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 세계가 일관되게 지향해온 감정의 내향성을 잘 보여준다.
반면 벤슨 분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음악을 밀어붙인다. 벤슨 분은 ‘Beautiful Things’에서 절절함을, ‘Mystical Magical’에서 비현실적 서사를, ‘Sorry I'm Here For Someone Else’에서 현실 회피의 고통을 차례로 펼쳐낸다. 벤슨 분은 고음의 폭발적 후렴, 짧은 구절 반복, 서사 중심의 뮤직비디오 구조를 결합하여, 감정의 피로가 아니라 감정의 해방을 유도하는 형식을 만들어왔다. 벤슨 분은 빌리 아일리시와 달리 외향적 정서 구조를 선택했지만, 정서의 성격 자체는 매우 유사하다. 벤슨 분 역시 자존감의 균열, 고립감, 감정의 과부하를 주제로 삼고 있으며, 다만 감정의 발화 방식에서 다른 리듬을 선택했을 뿐이다.
빌리 아일리시와 벤슨 분은 각각 다른 장르의 궤도를 따르고 있지만, 두 아티스트는 모두 Z세대와 알파세대의 정서적 좌표를 중심으로 음악을 재구성하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는 청중의 감정을 ‘잠재된 상태’로 설정하고, 음악이 그 상태를 건드리도록 설계한다. 벤슨 분은 감정을 ‘과잉된 상태’로 전제하고, 음악이 그 상태를 해소하도록 설계한다. 빌리 아일리시는 미니멀리즘과 고요함을, 벤슨 분은 스케일감과 선명한 감정을 선택했지만, 두 아티스트는 모두 '공감'이 아닌 '감정의 인정'을 목표로 삼는다.
빌리 아일리시는 곡을 통해 감정을 서술하지 않고, 감정을 재현한다. 빌리 아일리시는 감정을 이미지로 번역하는 대신, 청중이 감정 속에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한다. 벤슨 분은 정반대로, 감정이 흐트러지는 순간을 세밀하게 쪼개어 반복하고, 청중이 그 감정의 파편에 머리를 부딪치게 만든다. 빌리 아일리시는 ‘들리는 고요함’을, 벤슨 분은 ‘견디는 격정’을 중심으로 정서적 리듬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둘 다 대중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2025년 현재 미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정서적 깊이와 정서적 리듬이다. 빌리 아일리시와 벤슨 분은 그 정서의 두 극을 점유하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는 ‘무언의 말들’을 들리게 만들고, 벤슨 분은 ‘말해도 전해지지 않는 감정’을 터뜨린다. 두 아티스트는 감정을 단순하게 전달하지 않고, 감정이 구성되는 과정을 곡 안에 반영한다. 빌리 아일리시와 벤슨 분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 이 시대의 ‘불안’을 음악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략이야말로 Z세대 이후의 정서 소비 구조에 가장 정확히 부합하는 방식이다.
Z세대는 감정을 치유받기보다 감정을 말할 언어를 찾기를 원한다. 빌리 아일리시는 그 언어를 침묵과 잔상 속에서 찾고 있고, 벤슨 분은 폭발과 서사 속에서 모색하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와 벤슨 분은 서로 다른 방법을 선택했지만, 결국 같은 좌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2025년의 빌보드 핫100 차트는 두 아티스트가 어떻게 이 시대의 정서를 음악으로 구현해내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