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트렌드④] 구조는 어떻게 감각을 품는가
Forest: Architecture Infinite Hexahedron
[KtN 임민정기자] 2025년 동시대 조형예술은 더 이상 ‘보이는 것’만으로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다. 감각은 형태 너머에서 생성되고, 구조는 감정을 품는다. 조형예술 협업집단 KLOINM이 선보인 《Forest: Architecture Infinite Hexahedron》은 이러한 시대적 감수성 위에 구축된 소형 입체작업으로, ‘구조적 자아’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시각적 은유와 물리적 조형, 개념적 구조를 다층적으로 얽어낸다.
이 작품은 단지 시각적 흥미를 유발하는 오브제 차원을 넘어서, 존재의 층위와 감각의 밀도를 구조 내부에 침잠시킨 하나의 ‘형상적 사유체’다. ‘숲,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명칭이 시사하듯, 이 작품은 단순히 형태의 미감을 추구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는 유기적이고, 구조적으로는 절제된 육면체 안에서 존재론적 질문을 품는다.
정육면체의 구조적 언어, 감각의 다층화
작품의 기저 구조는 3×3×3의 정육면체이다. 이는 조형예술에서 가장 안정적인 구조이자, 수학적으로 완결된 공간 단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KLOINM은 이 익숙한 큐브를 구성하는 각각의 단위 구에 서로 다른 물성을 부여하며, 구조적 반복성 안에 감각적 다양성을 삽입한다. 검은색 발포 폴리스티렌, 거칠게 표면처리된 흑사, 유동적인 마블링 텍스처 등은 시각적으로 통일감을 갖추면서도 촉각적 불균형을 유도한다.
각 구체는 내부를 향해 보호본능적으로 수렴하는 구조적 자아(Self)의 상징이다. 작가는 이를 ‘내면 자아의 은신처’로 명명하며, 이 구조물이 ‘외부로부터의 보호와 내부 감각의 집중’이라는 이중 구조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개념은 조형적 균형보다는 감정의 불안정성과 심리적 층위를 반영하는 구성 전략으로 읽힌다.
깃털이라는 상징 — 무게를 부정하는 조형의 아이러니
정육면체 구조체 위로 삽입된 검은 깃털은 단일한 조형 요소임에도 가장 강력한 상징적 함의를 띤다. 깃털은 가벼움과 이동성, 생명성과 영적 상승을 동시에 지시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깃털은 오히려 구조물 전체의 긴장감을 한순간에 흔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중력과 수직성의 완결을 전제로 한 정육면체 구조 위에 이질적이고 비정형적인 깃털이 삽입된 순간, 작품은 구조의 완결성보다는 감각의 불확실성을 지향한다.
이는 곧 ‘자아의 역설’에 대한 조형적 은유로 해석된다. 인간의 자아는 외부 구조에 의해 보호받지만, 동시에 그 구조를 넘어서는 감각적 욕망과 정서적 진동을 품고 있다. 깃털은 이 내밀한 감정의 출구이며, 구조 내부에서 생성된 ‘감각의 상승’이다.
물성의 층위 — 재료가 말하는 감정의 언어
《Forest: Architecture Infinite Hexahedron》은 흑사, 황마끈, 대나무 섬유 등 자연 기반 재료와 발포 폴리스티렌 같은 인공물질을 병치함으로써 자연과 인공의 대립 구조를 시도한다. 특히 흑사로 코팅된 구체는 생명체의 흔적을 암시하는 동시에, 외부 침입을 막는 보호막의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질적 재료들의 조합은 단순한 소재의 병렬이 아니라, ‘물질을 통해 감정을 구조화한다’는 조형 철학의 실천이다.
KLOINM은 이 작은 정육면체 구조가 감정, 기억, 자아의 파편들을 안전하게 수용하는 일종의 ‘감각 저장 장치’로 기능하길 기대하며, 이를 ‘숲 속 은신처’라는 표현으로 시각화했다. 숲은 여기서 단순한 자연의 메타포가 아니라, 비가시적 존재들이 서로를 감싸며 공존하는 공간적 장치로 전환된다.
KLOINM의 구조 실험 — 조형언어의 미시적 진화
KLOINM이 본 프로젝트에서 시도한 ‘건축무한육면각체’ 개념은 단순한 구조 실험을 넘어서, 조형언어 자체에 대한 해체적 성찰로 이어진다. 이 육면체는 닫힌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은 비가시적 흐름과 감각적 진동으로 가득 찬 개방형 감정구조이다. 관객은 이를 단지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를 이 구조에 투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구조는 더 이상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감각적 교류의 플랫폼이 된다.
《Forest: Architecture Infinite Hexahedron》은 크기나 재료 면에서 작고 간결한 작업이지만, 그 안에 담긴 조형 언어의 밀도는 오히려 대형 설치작업보다도 더 심화된 개념의 층위를 지닌다. 이는 동시대 미술이 크기나 물리적 압도감이 아닌, 개념과 감각의 정밀도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는 태도를 반영한다.
감각의 구조화, 구조의 감각화
KLOINM은 이 작품을 통해 동시대 조형예술의 본질적 질문을 다시금 제기한다. 구조는 무엇을 감싸는가? 자아는 어디에 은신하는가? 감각은 어떻게 형상화되는가? 《Forest: Architecture Infinite Hexahedron》은 그 모든 질문에 대해, 작지만 밀도 있는 하나의 형상으로 응답한다.
2025년, 미술은 다시 감각의 언어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감각은 단지 즉각적인 자극이 아니라, 구조 안에서 천천히 응축되고, 은유로 번역되며, 물성으로 환원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KLOINM의 구조체는 그 안에 정지된 자아를 담고 있으면서도, 관객의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되는 ‘감각의 조형 구조’다. 이 구조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이 제안하는 ‘숲’은 바로 그 감정의 은신처이자,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보호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