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포트①] 이재용 무죄 확정, 사법 판단의 경계에 선 ‘삼성 합병 사건’
[KtN 박준식기자] 2025년 7월 17일,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에 대한 '경영권 불법승계 및 분식회계' 관련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변경이 주요 쟁점이었던 이 사건은 2015년부터 약 10년간의 수사와 재판 끝에 사법적 결론에 도달했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총 19개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하며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 회장과 전직 삼성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책임은 최종적으로 부정됐다.
핵심 쟁점: ‘합병 목적’과 ‘분식회계’ 판단의 불일치
이번 판결의 핵심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이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회계 부정 등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합병 목적에 대해 “경영 효율화라는 사업상 이유가 있었으며,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만을 위한 일방적 지시로 보기 어렵다”는 1·2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또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변경에 대해서도, 증거의 대부분이 위법하게 수집되었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당 사건과 관련된 다른 법원의 판단은 다소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은 2021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가 ‘고의적 분식회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은 이 합병을 매개로 한 뇌물 혐의로 각각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리적으로 각 사건의 성격과 적용법이 달라 동일한 결론이 나올 필요는 없지만, 핵심 사실관계를 달리 해석한 점은 일관성과 사법 신뢰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위법수집 증거의 판단과 그 영향
이번 판결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는 증거능력 판단이다. 검찰이 확보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서버의 백업자료(18테라바이트)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사법부는 형사절차에서의 인권보장을 강조하며 “증거 수집 과정에서의 절차적 위법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보다 우선”된다고 판단했다. 법률상 증거능력 인정은 적법한 절차를 전제로 하므로 법원 판단은 형식적 요건에 부합한다. 다만 해당 증거가 핵심 사실관계 입증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증거 배제의 타당성과 형사재판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 손실과 ISDS 소송: 경제적 영향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은 이 합병으로 수천억 원대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2024년 기준 최대 6,750억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공단은 2024년 9월 이재용 회장과 삼성 경영진을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해외 투자자들도 법적 대응에 나섰다. 미국계 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2025년 5월 국무회의는 메이슨 관련 패소로 인한 946억 원의 세금 지출을 확정했다. 두 소송의 총 배상액은 2,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관련 배상액 부담을 고려해 당사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 여부를 검토 중이지만, 법률적 요건과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으로 현실적 집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판결 이후의 쟁점: ‘면죄부’인가, ‘법리적 결론’인가
재계 일각은 이번 판결이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있어 법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위법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이 “사업상 필요성과 절차적 합리성”이 확보된 경우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사법부가 경제권력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핵심 증거의 다수가 절차상 문제로 배제되고, 총수의 행위가 형사책임을 피하면서 결과적으로 사회적 책임 역시 희석되었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판결이 대기업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대법원의 ‘엄격한 증거주의’ 원칙을 재확인한 사례로 평가하면서도,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 민사·행정·형사 판결이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것은 사법의 신뢰성과 일관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사법적 판단과 사회적 논의는 분리 가능한가
이번 판결은 경영권 승계에 따른 형사적 책임을 법적으로 종결지은 사건이다. 그러나 해당 판단이 자본시장 질서, 국민경제, 공공기관의 책임 구조 등 다층적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법적 판단과 사회적 평가의 간극은 명확히 존재한다.
사법부는 법률에 따른 판단을 내린 것이지만, 법률이 다루지 못한 국민 신뢰와 시장 공정성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형사상 무죄가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까지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관련 기관은 손해배상 청구, 구상권 행사 등 실질적 피해 회복 방안을 강구해야 하며, 사법부 역시 향후 유사 사안에서 법의 실효성과 정의 실현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보다 정밀한 균형을 요구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