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포트②] 무죄 이후 남은 책임…국민연금 소송과 ISDS 배상, 누구의 몫인가

2025-07-17     박준식 기자
2025. 1. 16.(목)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앞, 삼성 불법합병 2심 엄벌 촉구 노동시민사회 공동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  사진=참여연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2025년 7월 17일, 대법원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에 대해 경영권 불법승계 및 회계 부정 혐의와 관련한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이로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약 10년에 걸친 형사재판은 모두 종료됐다. 그러나 이 판결이 모든 법적 책임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국제투자중재(ISDS) 판정에 따른 국가 재정 부담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연금 손실 소송: 쟁점은 어디에 있는가

2024년 9월 13일, 국민연금공단은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삼성 측 전·현직 임원들과 함께, 당시 보건복지부 및 연금공단 관계자들까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가액은 5억 원으로 비교적 소규모지만, 이는 실제 추정 손해액의 일부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입은 손실 규모를 약 5,200억 원에서 최대 6,750억 원으로 추산한다. 공단은 감정 평가 결과에 따라 청구금액을 수천억 원대로 증액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의 핵심 쟁점

▶합병 비율 조작 및 회계 변경으로 인한 국민연금의 자산 손실

▶당시 복지부의 의결권 행사 개입 정황 및 책임 주체 규명

▶고의성 또는 중대한 과실의 존재 여부와 인과관계 입증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민사소송은 별도의 법리로 진행된다. 민사상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은 손해 발생과 인과관계만 입증되면 성립 가능하다. 따라서 형사 무죄는 민사상 책임 면제를 자동으로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심리 중이며, 회계자료 분석, 정부 개입 여부, 이해상충 판단 등 복합적 쟁점으로 인해 소송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유사한 대형 사건에서도 3~5년 이상의 심리가 이어진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사건 역시 수년 이상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투자분쟁(ISDS)의 재정적 여파

삼성 합병을 둘러싼 분쟁은 국내를 넘어 국제투자분쟁(ISDS)으로 확산됐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은 각각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했다. 이들은 2015년 합병 당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을 동원해 삼성물산에 유리한 결정을 하도록 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2025년 상반기, 메이슨은 약 3,200만 달러(한화 약 438억 원)의 배상 판정을 받았다. 이후 정부는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에 중재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5년 4월 최종 패소했고, 5월 국무회의에서 946억 원의 예비비 지출을 확정했다. 지연이자 및 소송비용을 포함한 금액이다.

엘리엇 사건 역시 별도로 진행 중이다. 2023년 8월 국제중재기관(PCA)은 한국 정부에 약 1억 8만 달러(약 1,100억 원)의 배상 판정을 내린 바 있으며, 추가 항소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로써 두 사건에서 확정되었거나 확정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 배상 규모는 약 1,500억 원에 달한다.

ISDS는 외국인 투자자 보호를 위한 국제규범이지만, 국내 정책 결정이 외국 자본의 손해 주장에 따라 국가 재정 부담으로 전가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책임 분산을 위해 당시 의사결정에 관여한 공무원과 민간 관계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으나, 형사 무죄 확정이 구상권 행사에 장애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원내부대표는 최근 국제중재소송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을 상대로 패소하며, 2,342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게 된 사실을 지적했다./사진= JTV뉴스 유튜브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제도 개선: 구조적 재발 방지를 위한 과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적 기금 운용과 기업 합병에 대한 제도적 개선 필요성이 다시 떠올랐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막대한 국민 자산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지만, 당시에는 이사회 회의록조차 부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외압 가능성에 대한 법적 점검도 부족했다는 평가가 있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책임투자 원칙을 도입하고 있지만, 실제 실행력과 독립성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 이해상충 방지 장치, 내부 심의 절차 강화, 자산 손실에 대한 실시간 공시 등 제도 보완이 요구된다.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사외이사제, 감사위원회 독립성 강화, 외부감사인 제도의 실효성 확보 등 거버넌스 개편이 필요하다. 특히, 회계 투명성과 정보공개의 정기화, 내부고발자 보호제도의 실질적 작동 여부도 중요 과제로 지적된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형사 판결에서 ‘경영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재확인했다. 재판부는 “합리적 사업 목적과 절차적 투명성이 입증되면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리로 해석될 수 있지만, 반대로 경영상 판단을 이유로 주주 피해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로 악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판결 이후, 사회적 책임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2025년 7월 17일 대법원의 형사 무죄 판결은 형벌적 책임의 종결을 의미했지만, 국가적·사회적 책임의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의 손해배상 청구, ISDS 소송에 따른 국가 재정 손실, 구상권 행사 여부 등은 제도적·정책적 영역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형사법정은 범죄 성립 여부를 따졌지만, 민사법정과 국제중재기구는 실질적 피해를 중심으로 판단을 이어가고 있다. 이 사건은 한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문제가 아니라, 자본시장 질서, 공적 자산 운용, 국가 책임구조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의 문제다.

향후 남은 소송과 정책 개선 과정을 통해, 국민적 손실을 누구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사법 판결은 사건의 끝이지만, 공공 책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이 남긴 또 하나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