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K-POP 허브 구축 전략⑥] 현지화 그 이상의 전략
SM 아카데미부터 Zalpha-Pop까지
[KtN 김동희기자] 2025년 6월, 싱가포르 도심 한복판에 ‘K-POP 아카데미’가 개설됐다. 이 교육기관은 단순한 댄스 학원이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설립한 정식 트레이닝 아카데미로, K-POP의 산업 확장이 ‘콘텐츠 수출’에서 ‘현지 생태계 편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SM은 자회사 ‘SM Universe’를 통해 이 아카데미를 설립하며, 보컬·댄스·음악 프로듀싱·퍼포먼스 등 정규 트레이닝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커리큘럼은 서울 청담동 트레이닝 센터와 동일한 방식으로 설계되었으며, 주요 타깃은 싱가포르 및 아세안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K-POP을 소비하는 팬이 아니라, K-POP을 직접 창작하는 구성원으로 산업 내부에 진입하고 있다.
이 전략은 한국 콘텐츠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단순히 음원을 수출하거나 투어를 개최하는 단계를 넘어서, 현지 창작 기반을 직접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SM의 아카데미는 K-POP을 ‘글로벌 산업 표준’으로 삼고, 이를 싱가포르 내에서 자생 가능한 교육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실험의 장이다.
반면, A2O 엔터테인먼트는 또 다른 경로를 택했다. 이 회사는 2020년 창립 이후, 싱가포르를 본사로 설정하고 한국·미국·중국에 자회사를 둔 글로벌 기획사 체계를 구축 중이다. A2O는 ‘Zalpha-Pop’이라는 독자적 장르를 선언하며, Z세대와 알파세대를 겨냥한 하이틴–로우틴 혼합 콘셉트 그룹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의 K-POP 시스템을 이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소비 세대에 맞는 포맷을 동남아 현지에서부터 직접 창조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A2O는 2023년 하이브와 저작권 계약을 체결하고, ‘싱가포르 HQ → 글로벌 트레이닝 → 다국적 동시 데뷔’라는 구조를 채택했다. 이는 ‘한국에서 연습생을 훈련시켜 데뷔시키는’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 동남아 현지에서 연습생을 발굴하고,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그룹을 세계 시장에 동시에 런칭하는 실험이다.
또 다른 축에서는 YG Plus가 움직이고 있다. YG는 싱가포르 인플루언서 기업인 Gushcloud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해, ‘콘텐츠–커머스–브랜딩’이 통합된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트레이닝보다 ‘글로벌 팬덤과의 연결’이다. K-POP IP를 현지 크리에이터와 연결해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것을 디지털 상거래 구조와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YG Plus의 접근은 전통적 기획사가 인재를 키워 아티스트로 데뷔시키는 방식과는 다르다. 이들은 이미 존재하는 크리에이터와 브랜드의 팬덤을 K-POP과 접목해 새로운 유통 경로를 창출하고 있다. 이는 K-POP이 단일 산업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콘텐츠 생태계와의 네트워크형 연동 모델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다.
이러한 전략들은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던진다. K-POP이 더 이상 ‘국내 제작–해외 소비’라는 단순한 직선 모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는 현지 인재 발굴, 현지 시스템 이식, 다국적 제작, 공동 기획, 브랜드 결합이라는 복합적 확장 모델이 작동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이 실험이 가장 정교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이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K-콘텐츠 글로벌 공동 제작 네트워크 구축’ 전략은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현재 정부는 아세안 주요 국가에 콘텐츠 공동기획센터 및 트레이닝 거점 설립을 검토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의 SM 아카데미 및 A2O 본사는 정책적 선도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한편,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K-POP 확장을 넘어, 현지 창작 생태계의 활성화와 산업 자립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SM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현지 작곡가·프로듀서와의 협업을 전제로 설계되었으며, A2O는 싱가포르 로컬 스태프들을 트레이닝 시스템에 적극 편입하고 있다.
이처럼 ‘현지화(Localization)’는 단순한 문화 번역을 넘어 ‘생태계 편입(Ecosystem Embedding)’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콘텐츠 산업이 진정한 글로벌화로 나아가기 위한 구조적 진화의 핵심이 된다.
2025년 현재, K-POP은 더 이상 한국에만 뿌리를 둔 산업이 아니다. 싱가포르는 K-POP이 타자의 땅에서 새로운 근육과 뇌를 생성하고, 새로운 정체성과 팬덤을 구축하는 현장이다. 그곳에선 한국어가 아닌 영어, 다국어가 중심 언어가 되고, 서울이 아닌 싱가포르가 기획의 출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