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K-POP 허브 구축 전략⑦] 팬덤 경제의 확장

Weverse부터 생일카페까지

2025-07-22     김동희 기자
캠플라주 예술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류볼린이 싱가포르 아트 위크를 맞아 전례 없는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사진= DECK,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동희기자]2024년 12월, 싱가포르 중심가의 한 카페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BTS 뷔의 생일을 맞아 열린 팬 주도 생일 이벤트에서 수백 명의 팬들이 줄을 섰고, 컵홀더와 포토카드, 한정판 굿즈가 순식간에 소진됐다. 이 비공식 이벤트는 팬 크리에이터 NUNAV(누나브, 인스타그램 팔로워 220만 명)와 기획사 AMP가 협업한 것으로, 단 4일 동안 이뤄진 운영만으로 수십만 원 규모의 굿즈가 판매됐고, 이는 싱가포르 내 K-POP 팬덤 경제가 얼마나 유기적이고 실제적인 소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K-POP은 이미 오래전부터 음악 산업의 범주를 넘어섰다. 앨범, 스트리밍, 콘서트는 기본이고, 팬카페, 굿즈, 디지털 커뮤니티, 패션, 카페 이벤트, 심지어 일상의 SNS 활동까지 모두가 수익과 연결되는 복합경제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팬은 단순한 수요자가 아니라 콘텐츠의 유통자, 마케터, 크리에이터, 그리고 공동 생산자가 된다.

특히 싱가포르는 이 ‘팬덤 경제’가 가장 정밀하게 작동하는 도시 중 하나다. 2021년 기준, 하이브의 팬 플랫폼 위버스샵(Weverse Shop)은 싱가포르 해외 직구 사이트 이용 순위에서 아마존, 이베이 등을 제치고 6위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K-POP 인기 이상의 현상이다. 팬들은 물리적 음반보다는 디지털 굿즈, 한정판 상품, 글로벌 멤버십, 특별 팬미팅 혜택 등을 포함한 고부가 상품에 지갑을 열고 있으며, 이는 ‘애정의 소비’가 ‘정제된 지불의지’로 전환된 사례다.

K-POP 기획사들은 이러한 팬덤의 특성을 정교하게 활용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 커뮤니티 운영, 커머스(굿즈 판매), 라이브 티켓까지 아우르는 수직 통합형 플랫폼을 위버스와 같은 자체 생태계 안에 구축함으로써, 중간 유통 없이 직접 팬 데이터를 확보하고, 고마진 수익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기존 서구 음악 산업이 스트리밍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과는 다른 모델이며, 팬 경험 전반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K-POP 고유의 수익공식이다.

특히 ‘싱가포르 팬 전용 멤버십’과 같은 초국적 로컬 전략도 본격화되고 있다. 팬미팅 우선권, 로컬 브랜드와 연계된 할인 쿠폰, 싱가포르 한정 디지털 콘텐츠, MD 선주문 혜택 등은 단순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넘어, 지역기반 정서와 결합된 프리미엄 팬 경험을 유도한다. 이는 단지 콘텐츠를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서, 특정 지역에서 팬이 된다는 경험 자체에 경제적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변우석, 아시아 팬들을 만나러 출발! '선재 업고 튀어' 이후 첫 팬미팅/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더 흥미로운 지점은 공식 기획사 외부에서 형성되는 팬 주도형 경제의 존재다. 앞서 언급한 생일카페 사례처럼, 팬 크리에이터와 민간 기획사가 협업해 자체 굿즈를 제작하고, 팬 행사를 기획하며, 자체 SNS 운영을 통해 바이럴을 유도하는 구조는 비공식적이지만 실제적인 시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생일 이벤트, 커피차 후원, 포토존 설치, 팬아트 전시 등은 기존의 음악 산업 분류 체계를 뛰어넘는 복합적 팬덤 경제의 실체를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수요에 따른 반응이 아니다. 팬들은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재가공하고, 확산시키며, 새로운 소비 경험을 공동 생산한다. 이는 산업 내부 기획자가 아닌 팬 커뮤니티가 시장을 설계하는 구조, 즉 '풀(pull)' 기반 시장 형성의 사례다. 기획사의 선택이 아닌 팬덤의 자발성이 시장을 흔드는 흐름 속에서, 기존 마케팅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025년 현재, 이재명 정부는 ‘글로벌 팬덤기반 플랫폼 고도화’ 정책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으며, K-콘텐츠 수출이 플랫폼 중심의 D2C(Direct to Customer) 모델로 전환되는 흐름에 따라, 데이터 기반 마케팅, 글로벌 멤버십 정책, 초개인화 커머스 모델 등 다층적 정책 지원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로컬 슈퍼팬 시스템’ 구축은 향후 플랫폼 수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싱가포르 팬들을 위한 전용 굿즈, 전용 티켓 패키지, 현지 브랜드와 협업한 컬래버 제품은 단지 매출 확대를 위한 방편이 아닌, 팬과 도시, 브랜드가 동시에 이익을 누리는 삼각 모델을 형성할 수 있다.

결국, K-POP은 콘텐츠 산업이 아니라 감정 기반 경제 모델이다. 팬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상품이 아니라 경험이며, 그 경험은 팬 본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강화된다. 싱가포르는 이러한 정서적 지불의지가 가장 명확하게 수익으로 전환되는 시장이다.
팬덤은 이제 산업의 끝단이 아니라 시작점이며, 팬은 소비자가 아닌 ‘공동 설계자’다. 그 중심에 K-POP이 있고, K-POP은 이제 팬과 함께 도시를, 경제를, 문화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