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트렌디 문화리포트] "예술은 산업이 아니다"…기초예술인들 “보조금법 개정, 국가가 외면하지 말아야”
연극인 중심 1,426명 연대 서명… “정산 논리로 창작 옥죄는 보조금법, 이재명 정부의 예술 공약과 충돌” 문체부 장관 후보 지명에 우려도 제기… “문화강국 대한민국, 기초예술 외면 말아야”
[KtN 임우경기자] 공연예술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기초예술인들이 7월 21일 오전 11시 20분,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보조금법의 전면 개정을 촉구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보조금법 개정 및 예술인을 위한 지원금법 제정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주관으로 열렸으며, 1,426명의 예술인이 연대 서명에 참여해 집단적 정치 행위로서 의미를 가졌다.
기자회견은 김재원 국회의원실 주관으로 진행됐으며, 박혜선(극단 사개탐사), 선명주(극단 뱃속의 나비), 선욱현(극작가)이 대표 발언자로 나섰다. 이날 현장에는 남정숙, 박정의, 방지영, 안희철, 이씬정석, 이종승 등 각 단체 대표 6인도 참석해 예술계의 총의를 함께했다.
“기초예술 외면한 보조금법, 정산 중심 제도에 창작 질식”
박혜선 대표는 “기초예술은 매우 복잡한 생태계이며, 산업과 동일한 회계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창작 현실을 외면하는 행정폭력”이라며 “보조금법은 더 이상 창작을 지원하는 제도가 아니라 예술인을 관리하는 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선명주 대표는 “창작활동보다 정산이 먼저인 현실”이라며 “출퇴근 명부, 고용보험 미가입에 따른 환수 조치, 필수 집행비율 때문에 기성품만 구매해야 하는 창작 환경은 창작 그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호소했다.
“극작가협회 유죄 확정… 예술인의 기부마저 범죄로 간주돼”
선욱현 작가는 (사)한국극작가협회의 사례를 통해 보조금법이 실제 어떻게 예술 현장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했다. 해당 협회는 1997년부터 희곡 전문지 『한국희곡』을 발간해 왔으며, 문화예술위원회 지원으로 사업을 진행했으나 인쇄비 항목 집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유로 벌금형이 확정되었다.
“편집위원들이 원고료를 자발적으로 기부해 출판을 유지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보조금 유용으로 판단했다. 이는 예술계에서 자율성의 공간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 판결은 예술계가 스스로 생존하려는 시도를 국가가 처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해당 협회는 지금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 예술계는 이를 “사형선고”라 표현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 후보 지명에 ‘기초예술계 불안’ 고조
기자회견에서는 최근 지명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우려도 집중 제기됐다. 추진위는 “기초예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인사가 수장이 될 경우, 예술정책 전반이 산업·관광 중심으로 쏠릴 수 있다”고 경계했다.
“기초과학과 기초수학이 사라지면 국가가 흔들리는 것처럼, 기초예술의 부재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공약과 충돌… “예술인 중심 정책 실현 시급”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예술인 고용보험 확대, 창작 중심 보조금제 개편, 문화예산 증액, 표현의 자유 보장 등 문화 공약을 제시하며 “창작자가 존중받는 사회”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은 이러한 공약이 현장에선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산 중심의 행정 논리’가 창작을 억압하는 구조로 고착되고 있음을 고발한 자리였다.
특히 보조금 항목 제한으로 원고료를 출판비로 전용한 것이 유죄로 확정된 극작가협회 사례는, 정책의 현장 적용이 창작 생태계에 어떤 식으로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번 기자회견은 단순한 성명 발표가 아니라, 정책 형성과 감시 주체로서 예술계의 정치적 존재감을 명확히 드러낸 사건이다. 문화정책을 예술가의 생태와 유리된 방식으로 추진할 수 없다는 점을 정부에 경고한 것이며, 예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국가 시스템의 전환을 요구한 목소리로도 해석된다.
추진위는 기자회견 직후,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90여 명의 예술인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보조금법 개정 의지를 다졌으며, 앞으로도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 사례를 공유하며, 제도 개선과 입법을 위한 공론화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1,426명의 예술인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이 절규를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에서 기초예술을 어떻게 위치시킬지가 한국 문화정책의 미래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