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패션리포트④] K-팝과 만난 베트남 — 글로벌 주목을 받은 로컬 브랜드의 역전극
[KtN 임민정기자] 베트남 패션 브랜드들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데에는 공통적인 기점이 존재한다.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아이유, 에스파, 트와이스 등 K-팝 아티스트들의 선택을 계기로 로컬 브랜드들은 단숨에 글로벌 무대에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브랜드들은 유럽 럭셔리 브랜드의 자본력이나 마케팅 조직 없이도, 소셜 미디어와 팬덤이라는 '21세기 유통 구조'를 통해 단시간 내에 인지도와 수출 실적을 확보했다. 베트남 패션은 더 이상 로컬 트렌드가 아니다. K-팝을 매개로 한 문화 교차의 무대 위에서, 베트남 로컬 브랜드는 세계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
엘소울(LSOUL) — SNS 15분 완판의 주인공
디자이너 응우옌 쫑 람이 2017년 론칭한 여성복 브랜드 엘소울은 처음에는 '엘서울(LSEOUL)'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페미닌하면서도 개성적인'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운 엘소울은 블랙핑크 제니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해당 브랜드의 레이스 미니스커트를 착용한 사진을 게재하며 일약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2,000장에 달하는 재고가 15분 만에 완판되었고, 이후 (여자)아이들의 미연, 아이유 등의 셀럽이 착용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엘소울은 이후 브랜드명을 공식적으로 변경하고, 2025년 상하이 플래그십 스토어 개장으로 본격적인 중국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플래그십 오픈 행사에는 중국 톱 KOL과 유명 패션 에디터가 대거 참여했으며, 베트남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위상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판시 클럽(FANCi Club) — Y2K 스타일의 대명사
판시 클럽은 2018년 디자이너 주이 쩐(Duy Tran)이 설립한 브랜드로, Y2K 감성과 섹시한 실루엣을 결합한 디자인으로 급부상했다. 브랜드의 전환점은 블랙핑크 로제가 뮤직비디오 <Lovesick Girls>의 티저에서 판시 클럽의 브라운 코르셋을 착용한 장면이었다. 이어 제니가 <The Album> 발표회에서 같은 브랜드의 셔츠를 허리띠처럼 연출해 착용하면서 바이럴 파급력이 폭발했다.
판시 클럽은 이후 Bella Hadid, Olivia Rodrigo, Dua Lipa 등의 팝스타는 물론, 트와이스 나연 등 K-팝 아티스트들까지 착용한 이미지가 SNS에서 연이어 회자되며 글로벌 인지도를 확보했다. 명확한 콘셉트, 선명한 실루엣, 스타일링의 자유도는 소비자의 자기표현 욕망과 맞물리며 이 브랜드를 ‘인터넷 세대의 럭셔리’로 부상시켰다.
라룬(La Lune) — 무대에서 빛나는 독창성
꾸악 닥 탕(예명: VickiVirus)이 2020년 론칭한 라룬은 시스루, 과감한 컷아웃, 스파이크 장식 등 퍼포먼스 기반의 이브닝 웨어를 전면에 내세운다. 라룬은 런칭 초기에 대규모 홍보 없이도 독특한 미학으로 주목받았고, 곧바로 K-팝 무대에 등장했다.
에스파의 무대 의상, (여자)아이들의 뮤직비디오, 블랙핑크 리사의 협업 의상 등으로 노출되면서 라룬의 존재감은 팬덤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브랜드는 오프라인 매장보다 K-팝 콘텐츠 안에서의 등장 빈도를 전략적 자산으로 삼았고, 그 전략은 소비자의 직관적인 감성에 정확히 도달했다.
붑베스(BUPBES) — '인형 감성'의 글로벌 확산
붑베스는 2022년 론칭된 브랜드로, 브랜드명은 베트남어로 ‘인형’을 뜻한다. 미니 드레스, 러플 장식, 로제트 디테일을 활용해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 인형 감성을 표현한다. 붑베스는 런칭 몇 달 만에 (여자)아이들 스타일리스트의 선택을 받았고, 이후 멤버 전원이 해당 브랜드 의상을 무대에서 착용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블랙핑크 로제가 월드투어 무대에서 붑베스의 드레스를 착용하면서 찾아왔다.
붑베스는 이후 태국, 한국 팬덤 사이에서 검색량이 폭증했고, SNS를 통해 스타일링 팁과 제품 정보가 퍼지며 자연스럽게 수출까지 확대되었다. 이처럼 전통 유통망 없이도 K-팝 팬덤을 통해 제품이 유통되는 흐름은 베트남 브랜드의 바이럴 모델로 정착되고 있다.
바이럴의 구조 — K-팝·SNS·팬덤의 3중 연쇄
엘소울, 판시 클럽, 라룬, 붑베스의 전략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 확고한 브랜드 정체성이다. 페미닌 로맨틱, Y2K 섹시, 퍼포먼스 이브닝, 인형풍 감성 등 각 브랜드는 고유한 디자인 언어를 구축해 K-팝 아티스트와의 연결에서 시각적 강렬함을 확보했다. 둘째, K-팝 스타의 SNS 노출이다. 아이돌이 제품을 입은 이미지가 공식 채널은 물론 팬 계정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며, 브랜드 노출과 호감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셋째, 글로벌 팬덤 기반의 자발적 소비 확산이다. 스타의 선택은 팬의 구매 행동으로 직결되며, 이는 수출·검색량·입점문의로 연결된다.
이 바이럴 구조는 고비용 광고 없이도 브랜드를 ‘문화현상’으로 전환시키는 경로이며, 베트남 브랜드는 이를 통해 공간의 제약 없이 세계 무대로 진입하고 있다.
‘패션+문화’ 브랜드 전략의 가능성
이들 브랜드는 단순히 K-팝 의상 공급처를 넘어서, 콘텐츠 산업과 협업 가능한 브랜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스타일링, 뮤직비디오 의상, 팬덤 마케팅 등 문화콘텐츠 전반과 교차하는 영역에서 베트남 패션은 강력한 창의성과 실행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콘텐츠 산업, 특히 스타일링 기반 예능·공연·웹콘텐츠 분야에서 베트남 로컬 브랜드와의 전략적 협업은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실험지대가 될 수 있다. 더불어 한국 브랜드가 베트남 내 팬덤 마케팅을 기획할 때, 이러한 로컬 브랜드 전략은 유의미한 레퍼런스로 기능한다.
‘글로벌 현상’으로 떠오른 베트남 패션
2025년 현재, 베트남 패션은 K-팝이라는 문화적 인터페이스를 통해 새로운 글로벌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산업을 넘어선 문화적 현상이자, 팬덤 경제 시대의 소비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대 사례다. 베트남 로컬 브랜드는 더 이상 로컬에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K-콘텐츠와 만나 세계로 향하는 감각의 언어를 구축했고, 그 언어는 이제 패션의 중심 무대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