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패션리포트⑤] 전략적 동반자에서 패션 파트너로 — 한국과 베트남, 그 다음 협력의 조건
[KtN 임민정기자] 2025년 현재, 베트남 패션 산업은 내수시장 확대와 브랜드 수출이라는 이중 궤도를 따라 성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생산기지로서의 역량을 넘어, 자생적 브랜드 경쟁력과 소비자 주도의 유통혁신이 존재한다. 동시대 베트남 패션은 단순한 하청이 아니라, 디자인 주도·문화 혼합·브랜드 발신이라는 ‘독립된 산업’으로 재정의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 패션 산업에 구조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은 여전히 베트남에 의류 OEM·ODM을 위탁하는 주요 국가 중 하나이며, 동시에 K-패션 브랜드가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중심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의 협력 구조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질적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생산기지를 넘어선 파트너십
2024년 기준, 베트남은 세계 3위 의류 수출국이자, 글로벌 1위 섬유·의류 OEM 클러스터를 보유한 국가이다. 이 같은 산업 인프라는 한국 브랜드에 있어 ‘효율적 생산 파트너’라는 장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왔다. 그러나 최근 베트남 내 의류 OEM 단가는 방글라데시, 인도, 미얀마 등 인접 경쟁국 대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ESG 감수성, 친환경 인증, 노동 조건 등의 국제 기준이 강화되면서, 단순 비용 경쟁력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위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한국 패션 기업은 이제 베트남을 ‘생산기지’로만 바라보는 관성을 넘어서야 한다. 유통망 협력, 콘텐츠 연계, 공동 브랜드 개발 등 ‘패션 산업의 파트너’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양국 간 산업 연계는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한국 브랜드 진출의 구조적 리스크
K-패션은 베트남에서 여전히 브랜드 파워를 보유하고 있지만, 유통 전략의 편중과 오프라인 접점 부족은 성장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FiinGroup과 KOCCA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내 K-패션 브랜드 다수는 고가·수입 브랜드로 포지셔닝돼 있고, 로컬 유통사의 입점 구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Shopee, Lazada 등 이커머스 플랫폼에만 집중한 전략은 할인경쟁 심화, 수익성 악화, 고객 데이터 부족이라는 구조적 리스크를 내포한다. 동시에 현지 브랜드는 빠른 의사결정과 SNS 기반 바이럴 전략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한국 브랜드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희석되고 있다. 진출을 넘어 '정착'을 위한 전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베트남의 ‘브랜드 국가화’ 움직임
2023년 베트남 정부는 자국 브랜드의 국제화를 위한 ‘브랜드 국가화’ 정책을 발표하며, 로컬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무역진흥청(Vietrade)과 베트남 디자인협회, 베트남청년디자이너연합 등은 베트남 브랜드의 패션위크 참여, 글로벌 유통 입점, 해외 마케팅에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K-패션이 과거 선점해온 해외 브랜드 지위를 위협하는 구조적 흐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로컬 브랜드 요디, Gia Studios, 판시 클럽 등은 정부 지원과 민간 네트워크를 결합해 국제무대에 진출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한국 시장 진출도 타진 중이다. 이제 협력은 일방적인 공급자-수요자 구조를 넘어, 대등한 브랜드 파트너십을 전제로 한 재구성이 필요하다.
한국-베트남 공동 생태계 구축의 가능성
2025년 이후 한국과 베트남 패션 산업은 세 가지 방향에서 협력을 구체화할 수 있다.
첫째, ‘공동 브랜드’ 개발이다. K-디자인 역량과 베트남의 생산·유통 기반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브랜드 개발은 아세안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다. 둘째, 스타일링 기반 콘텐츠 협업이다. K-팝·K-드라마 제작사와 베트남 디자이너 브랜드의 협업은 양국 콘텐츠 산업의 연계성도 강화할 수 있다. 셋째, 플랫폼 교차 진출이다. 한국의 무신사, 29CM와 같은 패션 플랫폼과 베트남의 Tiki, Zalo Shop 간 파트너십 구축은 상호 온라인 유통 확장 기반을 제공한다.
특히 콘텐츠·패션·플랫폼의 3자 협력은 단순한 제품 거래를 넘어, 문화 서사 기반의 소비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는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
‘브랜드 동맹’이 필요한 시대
한국 패션 산업이 베트남과의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과거의 수직적 위계에 기대서는 안 된다. 양국 모두에서 브랜드 경쟁력이 부상하고 있으며, 한류를 매개로 한 ‘문화 동맹’은 이제 산업적 동맹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공동 생산, 공동 유통, 공동 기획이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패션 파트너십이 요구된다.
베트남은 단지 한국 브랜드의 진출지이자 생산지로 머물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확보하고 있다. 성장률, 창의성, 플랫폼 역량, 소비자 감수성, 디자인 주체성. 한국과 베트남은 이제 ‘동반자’ 그 이상의 이름으로 패션 산업의 새로운 길을 설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