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리이매진②] 탈장르의 차체 — 자동차 디자인은 왜 ‘형태의 규율’을 벗어나는가

2025-07-28     임민정 기자
사진=BMW,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럭셔리 브랜드는 이제 속도보다 형태를 말한다. 엔진의 배기량이나 변속기의 정밀도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차체가 말하는 서사와 존재감이다. 최근 자동차 디자인계에서 조용히 확산되고 있는 흐름은 ‘탈장르화’다. 스포츠카는 더 이상 전통적 ‘스포츠카처럼’ 보이지 않고, 세단은 SUV의 실루엣을 차용한다. 장르를 경계 짓던 선들이 허물어지면서, 디자인은 형태와 개념의 유희로 진입하고 있다. 이 새로운 조류는 단지 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과 철학의 재편이다.

장르의 해체, 조형의 재구성

디자인의 탈장르화는 단순히 실루엣을 섞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차량 유형의 디자인 언어가 서로에게 침투하며, 기능적 구분보다 조형적 선언이 우선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대표적으로 루시드(Lucid)는 세단의 전고를 낮추고 SUV의 휠 하우스를 과장함으로써, ‘전통’을 거부한 채 신세대 전기차 소비자층을 겨냥한다. BMW XM은 스포츠카, SUV, 하이엔드 GT의 요소를 뒤섞은 괴기한 조형으로 상징적 존재감을 과시했고, 테슬라 사이버트럭은 픽업이라는 장르 자체를 정지시킨 채, 기하학적 평면만으로 차체를 형성해버렸다.

이 같은 흐름은 ‘카테고리 파괴’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전략이다. 전통적 SUV가 가진 수직성과 유틸리티 이미지를 고성능 세단의 유선형에 접목하거나, 슈퍼카 브랜드가 전기차 플랫폼을 바탕으로 ‘조형적 정적성’을 강조한 GT 콘셉트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장르라는 이름 아래 고정됐던 기대와 규칙은 해체되었고, 자동차는 이제 서사의 조형물로서 등장하고 있다.

조형이 된 기능 — 디자인이 성능을 대체하는가

디자인의 중심축이 성능에서 조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특히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두드러진다. 애스턴마틴 발할라(Aston Martin Valhalla), 부가티 볼리드(Bugatti Bolide), 제네시스 엑스(X) 콘셉트 시리즈는 차체의 모든 곡선과 단차, 통풍구와 라이트 배열까지 ‘기능의 언어’가 아니라 ‘시선의 흐름’으로 설계됐다.

이 차체들은 공기역학이나 제동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됐음에도, 소비자의 첫 반응은 언제나 ‘아름다움’이다. 이는 디자인이 단지 보조적 요소가 아니라, 기계의 본질을 감싸는 ‘감성의 장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고속주행의 체험은 손에 닿지 않지만, 디자인의 경험은 시선과 순간으로 전달된다. 하이엔드 자동차 디자인은 이 ‘즉각적 인상’과 ‘기능적 서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이퍼카의 존재 이유: 예술인가, 성능인가? 사진=Aston Marti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브랜드의 시선 — 조형언어를 확장하는 전략

브랜드들은 이제 자사만의 조형 언어를 ‘철학’으로 격상시키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운영한다. 포르쉐는 모든 전기차 모델에도 기존 내연기관 모델과 동일한 곡선과 비율을 유지하며, 브랜드의 역사적 연속성을 강조한다. 반면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는 ‘두 줄’이라는 시그니처 라이트 디테일을 통해 모든 차량의 정체성을 통합한다. 곡선과 단면, 패널 사이의 밀도조차도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일부로 기능한다.

BMW i 비전 디 이(Vision Dee), 메르세데스 벤츠의 비전 EQXX 등은 차체에 프로젝션 기술과 인터랙티브 LED를 접목해 차의 외형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형 가능한 조형물’이라는 개념까지 실험하고 있다. 이는 디자인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캔버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신호다.

커스텀과 수제작 — 조형적 자유의 극점

대량생산 브랜드가 규율과 연속성의 미학을 추구한다면, 수제작 커스텀 브랜드는 극단적 조형 실험의 장이다. 최근 Bandit9이 선보인 ‘Ducati 821 커스텀’은 바이크 디자인에서 탈장르의 흐름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전체 차체가 하나의 금속 조각처럼 제작된 이 바이크는, 스포츠 바이크의 퍼포먼스에 조각품의 정적 아름다움을 결합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헤드램프, 볼트 노출, 외부 배선조차 제거된 조형은 ‘기계의 형태는 기능에서 비롯된다’는 통념을 거부한다.

이런 흐름은 자동차 업계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롤스로이스 보트테일(Boat Tail)은 단 3대를 위해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었으며, 차체 뒤편은 요트의 갑판처럼 마감됐다. 이는 단지 커스터마이징이 아니라, ‘주문 제작 조형물’로서 자동차를 정의하려는 움직임이다. 오토모티브 디자인은 이제 미학, 기술, 수공예가 융합된 총체적 결과물로 자리 잡았다.

사진=Rolls-Royc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렌드의 심화 — 디자인은 기능을 이긴다

디자인의 탈장르화는 단기 유행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의 중장기적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 전기차 플랫폼이 등장하며 엔진 배치와 드라이브트레인 제약이 사라졌고, 자율주행 기술은 운전자 중심 레이아웃을 무력화했다. 이로 인해 차량의 ‘기능적 논리’가 약화됐고, 대신 브랜드의 철학과 디자인 언어가 전면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향후 자동차의 존재 방식을 바꿔놓을 것이다. 이동 수단으로서의 실용적 측면은 점차 후순위로 밀리고, 자동차는 ‘경험의 매개’, 혹은 ‘시각적 서사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디자인은 더 이상 기능의 옷이 아니라, 기능 그 자체를 대체하는 브랜드의 언어가 된다.

KtN 리포트

자동차 디자인은 지금, 형태와 장르의 규율을 해체하며 새로운 미학의 경지에 진입하고 있다. 하이엔드 브랜드와 커스텀 하우스는 이 흐름의 선두에서 조형과 기술, 개념과 철학을 교차시키고 있다. 탈장르화된 디자인은 단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라는 오브제가 어떻게 새로운 감각 질서를 구성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그리고 그 실험은, 브랜드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