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리이매진③] 들리는 정체성 — 자동차 사운드 디자인은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

2025-07-29     임민정 기자
사진=BMW,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 자동차 디자인에서 '소리'는 오랫동안 배경에 머물러 있었다. 엔진음은 주행 상태를 암시하는 신호였고, 턴시그널과 클락션은 기능적 전달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연기관의 종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전기차가 대세로 자리잡은 지금, 자동차의 ‘소리’는 단지 물리적 부산물이 아닌 ‘브랜드 감성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동차 사운드 디자인은 이제 형태나 소재 못지않게 브랜드의 철학과 미학, 감각을 표현하는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엔진이 사라진 자리, 소리를 디자인하다

전통적인 스포츠카는 배기음으로 정체성을 드러냈다. 포르쉐는 낮고 두터운 6기통의 공명을, 페라리는 고음의 V8 사운드를 통해 ‘들리는 속도’를 전달했다. 그러나 전기차는 기본적으로 무음에 가깝다. 모터의 회전 소음은 감각적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빈약하다. 이 공백은 ‘디자인된 소리’가 메우기 시작했다.

BMW는 전기차 라인업 시리즈의 가속 사운드를 작곡가 한스 짐머(Hans Zimmer)와 함께 설계했다. 운전자는 엑셀을 밟는 강도에 따라 마치 오케스트라의 스트링 사운드처럼 고조되는 음향을 듣는다. 포르쉐 타이칸(Taycan)은 고성능 주행 시 공명감 있는 저주파 사운드를 인위적으로 삽입하며 ‘디지털 배기음’을 생성한다. 이는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라, 브랜드 고유의 '청각적 아이덴티티'다.

감각의 정교화 — '청각 디자인'의 진화

사운드 디자인은 단순히 엔진음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고 있다. 방향지시등의 깜빡임 소리, 도어가 닫히는 음향, 주행 모드 전환 시의 사운드 피드백까지 모든 음향 요소가 브랜드 세계관과 일관되도록 설계된다. 메르세데스 벤츠 EQS는 차량의 시동, 잠금, 잠금 해제 모든 순간에 ‘감정적 터치’를 부여한 사운드 레이어를 삽입하며, 청각적 UX의 정점에 서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몰입감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시각보다 청각에 더 빠르게 반응하며, 소리를 통해 감정적 안정감이나 경계 반응을 구축한다. 전기차는 조용하기 때문에 운전자에게 '불안'을 줄 수 있으며, 따라서 ‘안정된 사운드 스케이프’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GV60과 아이오닉6 등에서 이를 적용하며, 차량 내외의 모든 음향을 ‘감성 설계’ 관점에서 조정하고 있다.

디자인의 확장 — 차체는 보이지 않는 청각적 조형물

사운드는 더 이상 기능의 부차물이 아니다. 오히려 차체를 보완하고, 브랜드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조형 언어’의 일부다. 리비안(Rivian)은 오프로드 주행 시 차량 외부에 울리는 저주파 사운드를 설정함으로써, 차량의 ‘존재’를 청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때 차량은 단지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청각적 존재감을 가진 ‘움직이는 조형물’로 전환된다.

내부 공간도 마찬가지다. 루시드 에어(Lucid Air)는 실내 음향을 콘서트홀 수준으로 설계하기 위해 고음역 반사와 저음역 흡음을 정교하게 조율했다. 사운드 시스템 브랜드와의 협업은 이제 하이엔드 차량의 필수 조건이 되었으며, 뱅앤올룹슨(Bang & Olufsen), 나임 오디오(Naim Audio), 메르디안(Meridian) 등이 각 브랜드의 사운드 미학을 형성하는 데 직접 관여하고 있다.

럭셔리카의 핵심 가치가 사라진다—퍼포먼스, 엔진, 감성적 경험의 위기. 사진=Rolls-Royc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브랜드의 목소리 — 청각적 정체성 구축 경쟁

브랜드는 이제 ‘소리를 말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전달한다. 롤스로이스는 고요함을 브랜드 가치로 설정하고, 차량 실내의 소음을 측정해 ‘정적의 미학’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 람보르기니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도 배기음의 잔향을 보존하기 위해 디지털 튜닝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는 브랜드가 무엇을 들려주고, 무엇을 들려주지 않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감각적 기억이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술과 감각의 접점 — 사운드 디자인의 전략적 위상

자동차 사운드 디자인은 더 이상 사운드 엔지니어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업은 디자이너, 마케터, UX 전문가, 뮤지션이 모두 참여하는 융합적 기획의 결과물이다. 사운드는 주행 경험을 감각적으로 증폭시키는 동시에, 브랜드에 대한 인지와 충성도를 높이는 심리적 장치다. 더불어 AI 기반 사운드 튜닝,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한 상황별 사운드 제어 등 기술 기반 감각 설계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도시 환경에서 전기차의 저속 이동은 보행자에게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어, 일정 속도 이하에서는 반드시 인위적 외부 사운드를 내야 하는 법적 의무도 존재한다. 이때 어떤 소리를 선택하고,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브랜드의 문화적 감수성과도 연결된다. 단지 들리는 소리가 아닌, ‘기억에 남는 청각의 정체성’이 필요한 시대다.

KtN 리포트

자동차 사운드 디자인은 ‘없던 것을 만들고, 있던 것을 지우는’ 감각적 설계의 영역이다. 엔진이 사라진 시대, 브랜드는 이제 소리로 정체성을 말하고, 소비자는 그 소리로 경험을 기억한다. 사운드는 시동 버튼보다 먼저 느껴지고, 로고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 자동차는 이제 눈에 보이는 디자인뿐 아니라, 귀에 들리는 디자인으로도 브랜드가 되는 시대에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