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리포트⑤] 규제냐 진흥이냐는 낡은 질문, 디지털 공정경제의 새로운 경로
[KtN 박준식기자] 온라인플랫폼 독점규제법(온플법)을 둘러싼 가장 오랜 프레임은 ‘규제냐 진흥이냐’라는 이분법적 구도다. 대기업과 일부 경제단체는 규제를 강화하면 산업이 위축되고, 플랫폼 생태계의 혁신 동력이 꺾일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시민사회와 중소사업자 단체는 독점이 해소되지 않으면 플랫폼 기반 경제 전체가 불균형과 불신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가 이미 산업의 기초 인프라로 자리 잡은 2025년 현재, 이 구도는 점점 낡은 틀로 전락하고 있다. 규제와 진흥은 양립 불가능한 가치가 아니다. 공정성을 중심에 둔 규범 재설계와 기술 생태계의 자율성은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과제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천명한 ‘디지털 공정경제’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시장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플랫폼 기반 산업이 자율과 성장만으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을 전제로 한다. 온플법은 그러한 인식의 연장선에서, ‘불투명하고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선명하고 예측 가능한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한 입법이다. 기술 중심 산업에서 공정성은 선택적 가치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원칙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플랫폼 생태계 전반에 대한 재설계다.
규제 설계는 사전적 통제와 사후적 시정의 이중 구조를 갖춰야 한다.
시장지배력을 가진 플랫폼에는 알고리즘 투명성, 입점 사업자 보호, 수수료 공개 등 선제적 의무를 부과하되, 스타트업·혁신기업에는 규제 유예와 모니터링 중심의 후속 조치를 적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는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와 일본의 자율준수계획 모델에서 이미 효과적으로 실험된 바 있으며, 한국 역시 이를 바탕으로 한국형 하이브리드 규제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규제 자체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단순히 대기업을 겨냥하거나 시장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권리, 중소상공인의 생존 기반, 데이터의 이동성과 경쟁 기반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규제의 디지털화’다. 구체적으로는 알고리즘 감시 기능의 외부 위탁, 이용자 권리 확인 도구의 마련, 플랫폼 간 상호운용성 확대 등을 포함하는 기술 기반의 집행 시스템이 필요하다. 행정력에 의존하는 구(舊) 방식의 법 집행은 한계가 있으며, 기술적으로 집행 가능한 규제 모델이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진흥 정책은 규제와 병행돼야 한다.
특히 플랫폼 산업의 진화는 단일 기업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혁신 역량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정위 등 유관 부처 간 정책 협업을 통해 스타트업과 중소 플랫폼에 대한 맞춤형 진흥 정책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 예컨대, 플랫폼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상생계획을 제출하고 이를 법적 책임이 아닌 정책 인센티브와 연결하는 방식의 ‘상생형 진흥모델’은 유럽과 일본에서 이미 검증된 구조다.
규제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법이 자주 바뀌거나, 집행 기관의 재량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경우 산업계는 오히려 장기적 투자와 기술 개발에서 불확실성을 느끼게 된다. 온플법이 성공적인 입법으로 기능하려면, 규제 기준과 대상 기업 지정 절차, 제재의 수위와 방식 등이 명확하고 일관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 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이해관계자 협의기구’가 운영되어야 한다. 플랫폼이라는 구조 자체가 다층적 이해관계를 포함하기 때문에, 입법도 ‘다층적 거버넌스’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온플법은 국제 기준과 연동돼야 한다.
디지털 경제는 국경을 넘는 구조이며, 법률적 통일성과 상호신뢰가 없이는 효과적 규제도, 기술 진흥도 이뤄지기 어렵다. 한국은 OECD, G20 등 다자 경제협력 채널에서 플랫폼 규제의 국제적 기준을 선도하거나, 적어도 능동적으로 조율하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무역압력과 유럽의 제도 수용 사이에서, ‘주권적 입법’과 ‘국제 조화’라는 두 원칙을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온플법이 단지 국내 입법이 아닌 글로벌 규범 경쟁의 일환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KtN 리포트
플랫폼 규제는 ‘진흥을 포기하는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질서를 회복하고 생태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과정이며, 그 자체가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반이다. 더 이상 ‘규제냐 진흥이냐’는 단순한 구도에 머물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어떤 규제가 산업의 질서를 살릴 수 있는가”, “어떤 진흥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촉진하는가”이다.
온플법은 디지털 경제 질서를 새롭게 그리는 헌정적 도전이다. 시장의 힘을 재조정하고, 공공성을 되살리며, 기술 혁신의 방향을 인간 중심으로 재설정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국이 디지털 시대의 공정경제를 실현하는 데 있어, 이 법은 규제가 아니라 ‘시민의 디지털 기본권을 지키는 사회적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