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영의 반대편, 인간의 자리
일의 정의가 바뀔 때, 우리는 누구를 중심에 둘 것인가
[KtN 박준식기자] 생성형 AI가 기업 조직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보고서 초안 작성, 이메일 자동화, 내부 데이터 요약, 회의록 정리까지. 도입 초기에는 ‘보조 수단’에 머물던 기술이 이젠 업무 흐름 자체를 설계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명확하다. 시간은 줄고, 정확도는 높아지며, 반복적 노동은 자동화된다. 하지만 이 효율성의 이면에서, 우리는 일이라는 개념의 해체를 목격하고 있다.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다. 생성형 AI는 인간이 일해왔던 방식의 구조를 다시 쓰고 있다.
이전까지 하나의 직무로 묶여 있던 업무가 AI의 개입을 계기로 분해되고 재조립된다. 조사와 자료 수집은 AI가, 전략과 판단은 사람이 담당하며, 최종 산출물은 다시 AI가 다듬는 방식이다. 업무의 전체를 수행하던 인간은 이제 그 일부만을 감수하거나 검토하는 위치에 놓인다. 이로써 한 사람의 전문성과 책임, 숙련의 과정이 기술과 분할된다. 직무는 더 이상 정해진 기능이 아니라, 유동적으로 재구성되는 작업 단위로 변모하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인간 노동의 의미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초안을 작성하고, 인간이 이를 검토하는 체계에서 ‘기여’라는 개념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누가 판단을 내렸는지, 누구의 판단이 더 중요했는지, 무엇을 창의적 산출물이라 부를 수 있는지 경계는 불분명하다. 조직 내부의 신뢰 구조 역시 영향을 받는다. 기존에는 동료와 리더, 실무자의 판단이 책임을 공유했지만, 이제 의사결정의 일부가 비가시적인 알고리즘에 위임되면서 그 책임 주체가 분산되고 희미해진다.
생성형 AI가 실제 업무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경영 전략은 기술 기반 효율화에서 인간 기반 설계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기술 도입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어떤 원칙에 따라, 누구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 것인가다. 목적 없이 기술이 쓰일 때, 조직은 단기적 성과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정체성을 잃게 된다. 조직은 기술에 적응하기보다, 기술을 조직의 철학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기업이 생성형 AI를 도입하면서 직면하는 갈등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자리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조직의 선택이다. 기술은 빠르다. 하지만 의미는 사람이 만든다. AI가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계속 인간의 이름으로 남겨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기술의 발전은 곧 노동의 공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