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러 시대②] 밀리터리 패션, 긴장과 스타일의 이중주

다시 돌아온 군복의 그림자

2025-09-12     신미희 기자
Alpha Industries Unveils its FW25 ‘Ultra Violet’ Collection. 사진=Alpha Industri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가을·겨울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이 있다. 바로 군복에서 비롯된 밀리터리 무드다. 알파 인더스트리즈의 FW25 ‘울트라 바이올렛’ 컬렉션은 그 전형적인 귀환을 보여준다. 어두운 톤의 플라이트 재킷, 카모플라주 패턴, 전술 가방과 헬멧을 착용한 인물들의 이미지. 한눈에 전장의 긴장감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도시의 밤거리와 맞닿아 있다.

군복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폭력, 보호와 연대, 긴장과 해방이라는 상반된 상징을 동시에 품는다. 패션이 이 이미지를 매 시즌 불러내는 이유는 단순히 스타일 차원이 아니다. 불안한 사회 분위기, 경제적 불확실성, 젠더와 세대의 변화 같은 복잡한 맥락이 모두 얽혀 있다. 이번 편에서는 밀리터리 패션이 지닌 사회적 함의와 현재의 패션 산업에서 어떤 의미로 재해석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역사적 맥락, 불황과 긴장이 낳은 유행

밀리터리 스타일은 20세기 내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수 잉여 물자가 민간으로 흘러들면서 MA-1 재킷과 전투용 카고 팬츠가 거리의 아이템으로 변모했다. 1970년대에는 베트남전 반전 운동 속에서 군복이 아이러니하게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1990년대 걸프전 이후에는 카모플라주 패턴이 힙합과 스트리트 문화 속에서 대중화되었다.

이처럼 군복은 단순히 전장의 잔재가 아니라, 시대의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불안을 반영하는 패션 언어였다. 전쟁의 공포가 짙을수록, 경제적 불황이 깊어질수록 거리에는 다시 군복풍 아이템이 늘어났다. 소비자는 옷을 통해 불안한 시대를 견디는 동시에, 집단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2020년대의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정학적 갈등, 기후 위기, 글로벌 경기 둔화가 이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긴장이 흐른다. FW25 시즌에 다시 밀리터리 무드가 전면으로 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전장의 언어에서 거리의 언어로

FW25 화보는 이 이중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헬멧과 블랙 아웃핏으로 무장한 인물들이 둘러싼 가운데, 중심에 선 모델은 군인이라기보다는 도시의 전사처럼 표현된다. 이 장면은 군사적 긴장과 동시에, 도시의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생존 본능을 시각화한 듯하다.

밀리터리 무드는 이제 더 이상 특정 집단만의 복장이 아니다. 젠더리스와 유니섹스 흐름 속에서 남성과 여성, 나아가 모든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스타일로 확장된다. 특히 스트리트 문화와 결합하면서, 군복의 남성적이고 위압적인 이미지는 새로운 코드로 변환된다. 그것은 더 이상 국가 권력의 상징만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긴장은 남아 있다. 군복이 가진 위협적 이미지, 폭력의 상징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패션이 이 양가적 이미지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사회적 평가도 달라진다. 전장을 미화하는 위험을 안고 있는 동시에, 그 긴장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할 가능성도 함께 존재한다.

시장과 세대의 해석 차이

밀리터리 패션이 반복적으로 돌아오지만, 세대별로 해석은 다르다. 30대 이상 세대에게는 군복 스타일이 실용성과 내구성, 그리고 일정한 안정감을 의미한다. 반면 Z세대에게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전쟁이나 군사적 긴장보다는 거리의 스타일, SNS에서 공유되는 ‘쿨함’과 연결된다.

가격 역시 중요한 변수다. 프리미엄 전략을 유지하는 알파 인더스트리즈의 FW25 컬렉션은 특정 소비자층에게만 도달할 수 있다. 고가의 밀리터리 테크웨어는 애호가에게는 상징적 아이템이지만, 대중적 확산에는 장벽이 된다. 특히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가 이어지는 시기에, 젊은 소비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다.

결국 시장은 양분된다. 기능성과 내구성을 중시하는 기성세대, 감성과 자기 표현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 밀리터리 무드가 이 둘을 동시에 설득할 수 있을지, 아니면 특정 집단의 전유물로 남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Alpha Industries Unveils its FW25 ‘Ultra Violet’ Collection. 사진=Alpha Industri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글로벌 무드와 K-패션의 접점

흥미로운 점은 한국 패션 시장에서 밀리터리 무드가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오버핏과 유틸리티 무드를 적극 차용해왔고, 그 과정에서 군복의 이미지가 일상적인 스타일링 속으로 녹아들었다. 솔리드옴므의 구조적 디자인, JiyongKim의 실험적 재해석은 알파 인더스트리즈가 제시하는 밀리터리 무드와 연결된다.

특히 한국 소비자들은 하나의 아이템을 여러 방식으로 변주하는 데 익숙하다. 재킷을 원피스처럼 입거나, 카고 팬츠를 포멀한 재킷과 매치하는 등 군복의 기능적 요소를 새로운 문맥에서 사용한다. 이런 습관은 글로벌 밀리터리 패션이 가진 무거운 이미지를 한국식 유연성으로 완화한다.

알파 인더스트리즈의 FW25가 보여주는 강렬한 전술적 이미지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직접적으로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유틸리티 무드와 오버핏 트렌드라는 공통분모에서 다시 공명한다.

위험과 기회가 교차하는 지점

밀리터리 패션의 귀환은 산업적으로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품는다. 한편으로는 기능성과 내구성, 유니섹스 스타일이라는 요소가 현대 패션 시장의 키워드와 맞닿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적 이미지를 상업화하는 데 따른 사회적 반발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밀리터리 무드가 패션 쇼에 자주 등장했지만, 동시에 전쟁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군복 이미지는 특정한 역사적 기억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 소비에는 언제나 긴장이 따른다.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이 양가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긴장과 해방 사이, 패션의 양면성

밀리터리 패션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긴장과 사회의 불안을 옷이라는 언어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FW25 시즌에 다시 등장한 군복풍 아이템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불안정한 세계의 거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해방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 군복의 실용성을 일상에 가져오고, 젠더와 세대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긴장과 해방, 위협과 보호라는 양가적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밀리터리 패션은 늘 논쟁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영역으로 남는다.

우리는 전장을 미화하기 위해 군복을 입는가, 아니면 불안한 시대를 견디기 위해 그것을 변주하는가. 패션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짐으로써, 사회와 개인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FW25 울트라 바이올렛 컬렉션이 보여준 풍경은 그 거울 속에 비친 오늘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