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A]선인장과 인간, 감정의 가시를 드러내다

홍설작가 「속을 품을 선인장들」 선인장이 우리를 비추는 순간

2025-09-14     박준식 기자
홍설작가. 속을 품을 선인장들(Cacti with Inner lives) 80cmX100.2cm.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선인장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식물이다. 물이 거의 없는 사막에서도 가시와 두꺼운 표피로 몸을 지키며 오래 버틴다. 동시에 선인장은 ‘아름다움’과 ‘위험함’을 동시에 지닌 존재다. 붉은 꽃을 피우지만 가시는 쉽게 다가올 수 없게 만든다. 홍설작가의 작품 「속을 품을 선인장들(Cacti with Inner Lives)」은 바로 이 이중적 속성을 인간의 몸과 감정에 투영한다.

작품은 단순히 식물학적 묘사가 아니다. 선인장의 형상 안에는 인간의 육체가 겹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몸이 경험한 억눌림과 욕망, 방어와 상처가 선인장의 표면과 구조로 번역되어 있다. 관람자는 처음에는 낯선 식물을 마주하지만, 곧 그것이 자기 자신의 몸과 감정을 비추는 은유임을 깨닫게 된다.

형상: 부드러움과 방어의 이중주

작품을 이루는 두 개의 주요 형상은 서로 대조적이다. 왼편의 유기체는 유방을 연상시키며 부드럽고 둔탁한 표면을 가진다. 분홍빛의 살결 같은 질감은 따뜻하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곳곳에 박힌 유두 같은 돌기들은 불편한 시선을 유발한다. 그것은 발화되지 못한 진심, 타인과 연결되지 못한 감정의 흔적처럼 보인다.

반대편의 선인장은 훨씬 복잡하고 날카롭다. 표면은 주름지듯 구불거리며, 그 사이사이에서 붉은 가시가 솟아 있다. 이는 지나치게 강화된 방어, 타인과의 접촉을 거부하는 자의식의 구조를 시각화한다. 두 형상은 대조적이지만, 결국 같은 내면을 반영한다. 하나는 부드럽지만 상처 입은 감정을, 다른 하나는 상처 이후 더욱 단단해진 방어를 보여준다.

색채와 질감: 익숙하면서도 낯선 살빛

작품의 색채는 전체적으로 분홍과 붉은 계열에 집중되어 있다. 보통 분홍은 여성성, 연약함, 혹은 따뜻함의 색으로 이해되지만, 여기서는 불편함과 낯섦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화면의 배경은 은은하게 밝은 빛으로 처리되어 두 형상이 무대 위에 놓인 듯 드러난다.

형상의 표면은 세밀하게 묘사되어 살결 같은 촉각적 감각을 자극한다. 동시에 주름과 가시가 날카롭게 솟아 있어, 친근함과 위협이 동시에 느껴진다. 관람자는 이 모순된 감각 앞에서 긴장한다. 그것은 곧 억눌린 감정과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인간의 내면적 상황을 닮아 있다.

철학적 층위: 억눌림, 욕망, 기억의 흔적

홍설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감정의 억눌림과 방어, 그리고 성적 욕망을 병치한다. 유방을 닮은 형상은 욕망과 연결되지만, 결코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욕망이 사회적 억압 속에서 어떻게 비틀려 드러나는지를 상징한다. 반대로 가시 돋친 선인장은 상처받은 감정이 더욱 강한 방어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단순히 육체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살갗에 박힌 가시 하나, 솟아난 돌기 하나가 모두 기억의 덩어리이자 감정의 흔적이다. 육체는 기억한다. 억눌린 감정은 몸의 형태와 표면으로 스며들어 남는다.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흔적’이 시각화된 것이며,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이 곧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라는 현상학적 관점을 환기한다.

동시대 미술과의 교차점

이 작품은 여러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몸에 대한 재사유

최근 미술계에서는 다시금 신체에 대한 탐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페미니즘 미술은 여성의 몸을 재해석하고,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교차시킨다. 홍설의 선인장-육체 도상은 이 두 흐름과 겹쳐 있다.

감정의 시각화

팬데믹 이후 미술은 정서적 치유와 내면 탐구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홍설의 작업 역시 단순한 형상 제시가 아니라, 감정의 흔적을 촉각적 이미지로 환기한다. 관람자는 화면 앞에서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투사하게 된다.

유기적 초현실주의의 갱신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적 도상을 유기적이고 생물학적인 형상으로 확장하며, 20세기적 전통을 동시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한다.

 

홍설작가. 속을 품을 선인장들(Cacti with Inner lives) 80cmX100.2cm.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은유의 힘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은유의 밀도에 있다. 선인장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상징이다. 가시와 방어, 생존의 이미지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설은 이 상징을 인간의 감정과 육체로 치환해 보편적이면서도 낯선 경험을 창출한다.

또한 색채와 질감은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살결 같은 분홍빛과 날카로운 가시가 동시에 존재하는 화면은 관람자에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곧 인간의 감정 구조 자체를 반영한다.

상징의 반복 가능성

다만, 선인장과 육체의 결합이라는 도상은 반복될 경우 관습화될 위험이 있다. 선인장이라는 은유가 강렬한 만큼, 동일한 방식이 누적되면 상징이 낡을 수 있다. 또한 성적 기호와 방어 기호의 병치가 과도할 경우, 관람자에게 특정 해석을 강요할 가능성도 있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도상적 변주가 요구된다.

K-ART와의 접속: 단색 이후의 몸의 언어

한국 현대미술은 오랫동안 단색화와 절제의 미학으로 세계에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세대는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언어로 세계와 소통한다. 홍설의 작품은 그 전환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 특유의 억눌림과 방어, 욕망과 단절의 감정 구조가 선인장이라는 형상 속에 담긴다. 동시에 그것은 한국을 넘어 보편적 감정의 언어로 확장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홍설의 작업은 K-ART가 세계 미술계에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선인장이다

「속을 품을 선인장들」은 결국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모두 타인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지만, 상처의 경험 때문에 가시를 세운다. 우리는 욕망을 품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억눌림과 방어 속에서 비틀린다.

홍설작가는 선인장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시각화하고, 그 감정의 흔적이 어떻게 육체를 변형시키는지 보여준다.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추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우리 몸에 남은 감정의 흔적은 어떻게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이다. 선인장은 결국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