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30년의 도전②] 한국영화 위기, 부산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화려한 영화제와 침체한 산업의 간극
[KtN 신명준기자]부산국제영화제가 30회를 맞아 경쟁부문 신설이라는 변화를 선언했지만, 정작 한국영화 산업의 현실은 화려한 레드카펫과 거리가 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객 수는 회복되지 못했고, 대작 중심의 편중 구조는 심화되었다. 극장가를 이끄는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며, 독립·예술영화는 상영관조차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 위기를 논의하는 장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제가 진정으로 해법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크다. 영화제가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BIFF가 위기를 소재 삼아 담론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자기과시의 장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한국영화 위기의 현황
팬데믹 이전 한국영화는 연간 2억 관객을 넘나들며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관객 수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회복세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았다. 극장 산업 자체가 위축되면서 투자 구조가 붕괴했고, 중·저예산 영화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기회를 잃었다.
OTT의 성장도 양날의 검이었다. 일부 작품은 새로운 유통망을 찾았지만, 극장 중심의 수익 모델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한국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K-콘텐츠가 글로벌 플랫폼에서 주목받는 상황과 달리, 정작 국내 극장가에서는 관객이 외면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화려한 국제적 성취와 국내 산업의 침체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영화제의 자의적 역할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한국영화의 현재’를 보여주는 장을 자임해왔다. 개막작에 한국 감독의 신작을 배치하고, 신예 여성 감독 프로젝트나 독립영화 섹션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또한 포럼 BIFF에서는 한국영화 위기와 OTT 시대의 대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영화제의 프로그램 기획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상영관 확보, 투자·배급 구조의 정상화, 관객 회복 같은 과제는 영화제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럼에도 BIFF는 종종 스스로를 ‘위기 해결의 플랫폼’으로 과장하며, 담론적 주도권을 행사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제가 산업 위기를 자기 존재를 강화하는 장치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개막작의 상징과 한계
올해 BIFF의 개막작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거장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한국영화의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개막작에 대한 관심이 곧 한국영화 산업 전반의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수 거장의 성취가 전체 산업의 침체를 가려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이와 동시에 BIFF는 신예 여성 감독을 조명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는 분명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넓히는 중요한 시도다. 그러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산업적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영화제가 사회적 의제를 소비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포럼과 담론의 이중성
포럼 BIFF에서는 한국영화 위기와 OTT 시대의 새로운 모델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산업 전문가, 플랫폼 관계자, 감독들이 모여 해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실질적 대안으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
영화제가 산업 담론을 선도한다는 명분은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정작 정책이나 제도 개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논의의 장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결국 BIFF의 포럼은 상징적 제스처에 그칠 위험이 크다.
관객 친화와 산업 구조의 괴리
BIFF는 꾸준히 ‘관객이 주인공인 영화제’를 내세워왔다. 커뮤니티 비프, 동네방네 비프 같은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와 관객 참여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객 친화적 실험은 영화제의 행사적 성격을 강화할 뿐, 산업 위기와는 별개다.
극장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 관객을 다시 불러들이는 문제는 영화제가 아닌 배급·상영 구조와 직접 맞닿아 있다. BIFF가 아무리 관객 친화적 프로그램을 확대하더라도, 산업 전체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영화제의 자기과시적 구조
BIFF는 한국영화의 위기를 다룬다는 명분으로 프로그램과 포럼을 확장하지만, 이는 동시에 영화제 자체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위기를 논의한다는 사실이 곧 BIFF의 권위를 높이는 자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영화제는 위기의 실질적 해법보다는, 위기를 통해 스스로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영화제가 감당할 수 있는 몫
한국영화의 위기는 단순한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결과다. 극장 산업의 축소, OTT의 성장, 투자·배급 시스템의 불안정이 맞물리면서 전통적 모델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BIFF가 한국영화 위기를 담론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해법이 되지는 않는다. 영화제가 해결할 수 있는 몫과 그렇지 않은 몫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BIFF가 산업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관이 아니라, 작품을 조명하고 담론을 제시하는 문화적 장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30주년을 맞은 BIFF는 스스로를 산업의 구원자로 포장하기보다, 영화제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면서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영화제를 통해 위기를 드러내고 토론을 촉발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목소리를 발굴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해법을 과도하게 자임하는 순간, BIFF는 산업 위기를 이용하는 자기과시적 무대로 전락할 수 있다.
한국영화가 직면한 위기는 복잡하고 구조적이다. BIFF의 역할은 그 위기를 설명하고 기록하며, 새로운 흐름을 조명하는 데 있다. 해법은 영화제 밖에서, 산업과 정책, 관객의 선택 속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