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경제 2025 ④] OTT가 연 방송·영상 수출의 새 지평
이례적 성장률이 던진 메시지 OTT 중심으로 재편되는 산업
[KtN 박준식기자]2025년 1분기 방송·영상 콘텐츠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9퍼센트 증가했다. 수치만으로도 압도적이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지형이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보여준다. 내수에서 힘을 쓰지 못하던 방송·영상 산업이 해외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았고, 그 중심에는 OTT 플랫폼이 있었다.
OTT는 단순히 새로운 배급 경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제작 방식, 투자 구조, 소비 패턴이 OTT를 통해 달라졌고, 한국 콘텐츠는 이 변화를 발판 삼아 글로벌 시장에서 가파른 도약을 이뤘다.
내수 침체와 해외 수출의 대비
국내 방송·영상 시장은 포화 상태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광고 수익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해외 수출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 포맷은 이제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동시 공급되는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이 키운 성장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아마존프라임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한국 콘텐츠를 세계 시장으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K-드라마’라는 브랜드는 이미 국제적 보편성을 갖췄고,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한국 콘텐츠를 다양한 언어권 시청자에게 노출시켰다. 이는 과거 배급 구조로는 불가능했던 시장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장르적 다양성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로맨스 드라마, 스릴러, 시대극, 예능 포맷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OTT를 통해 소개되면서 한국 콘텐츠의 스펙트럼은 더 넓어졌다. 이는 수출 규모뿐 아니라 문화적 영향력까지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제작 방식의 변화
OTT 중심의 유통 구조는 제작 현장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에피소드 단위 공개 방식, 글로벌 동시 공개, 특정 플랫폼 전용 콘텐츠 제작이 보편화됐다. 제작비 조달도 달라졌다. 글로벌 플랫폼이 직접 투자하거나 사전 계약을 통해 제작비를 보장하면서 국내 제작사들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실험적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플랫폼 의존이 심화됐다. 국내 제작사가 글로벌 플랫폼의 요구에 맞춰 기획 방향을 조정하거나, 판권 소유권을 넘기는 사례가 늘어났다. 성장의 기회와 함께 종속의 위험이 동시에 커진 셈이다.
산업 트렌드가 드러내는 함의
방송·영상 산업의 해외 성장에는 두 가지 흐름이 공존한다.
하나는 세계적 수요의 확산이다. 한국 콘텐츠가 특정 문화권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 코드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이다. 새로운 팬덤과 시장이 끊임없이 열리면서 산업 외형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플랫폼 종속의 심화다. 유통과 투자, 심지어 기획 단계까지 글로벌 플랫폼이 개입하면서 국내 기업의 자율성은 줄어든다. 수익 배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거나, 장기적으로 자체 IP 확보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적 의미와 과제
방송·영상 수출의 급성장은 한국 경제에 몇 가지 함의를 던진다.
첫째, 콘텐츠 산업이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층 높아졌다. 제조업 의존도가 줄어드는 가운데, 문화 산업이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둘째, 플랫폼 종속 구조는 장기적 불안 요인이다. 글로벌 OTT는 한국 콘텐츠의 확산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협상력을 약화시켰다. 수익 배분에서 불리해지고, 지식재산권이 외부로 넘어가면 국내 기업의 장기 경쟁력은 훼손될 수 있다.
셋째, 내수 시장의 침체와 해외 성과의 괴리는 산업 생태계의 균형을 흔든다. 해외 성과가 아무리 커져도 국내 산업이 활력을 잃으면 고용과 창작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정책적 과제는 자명하다. 내수 시장을 되살릴 전략과 더불어,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상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독자적 OTT 역량 강화, IP 자산화, 공정 계약 구조 마련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고성장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수 있다.
기회와 종속 사이의 줄타기
방송·영상 산업은 2025년 1분기에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두었다. 수출 성장률 159퍼센트라는 수치는 한국 콘텐츠가 더 이상 주변적 존재가 아니라 세계 시장의 핵심 공급자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성공의 이면에는 플랫폼 의존이라는 구조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 콘텐츠 산업이 앞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단순한 공급자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협상력과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내수와 수출, 성장과 자율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OTT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종속의 굴레가 될 수도 있다. 방송·영상 산업의 미래는 이 기회와 위험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