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고속도로②] 칩에서 전력으로, AI의 숨은 토대
이재명 정부, 에너지 전략으로 주권 AI를 뒷받침하다
[KtN 박준식기자]이재명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권 AI 전략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라는 가시적 성과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AI 인프라를 움직이는 힘은 전력이다. 2025년 10월 1일 서울에서 열린 대통령과 샘 알트만 대표의 회동 이후, 국내외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지적한 것도 “전력망 없이는 칩도, 데이터센터도 작동할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세계 전력 사용량의 8%를 차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남과 포항 데이터센터가 완공되면 해당 지역의 전력 수요가 현재보다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기존 산업 구조와 전력 수급 체계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신호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균형
이재명 대통령은 회동 직후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자력의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단순한 환경·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주권 AI 전략의 핵심 조건을 명확히 한 발언이다.
전남 데이터센터는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망을 결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포항은 원자력 발전을 활용한 안정적 전력 공급 모델을 논의한다. 두 지역 모두 장점과 약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지만, 기상 조건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불안정하다. 원자력은 안정성과 대규모 공급에 강점을 지니지만, 사회적 합의와 안전 문제가 따라붙는다. 정부는 하이브리드 전력 체계를 통해 두 에너지원을 결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라인은 24시간 안정적 전력을 전제로 운영된다”며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수 있는 원자력과 LNG, 에너지저장장치(ESS)의 결합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송전망, 가장 큰 병목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초대형 전력 수요가 발생하는 지역에 전력을 전달하는 송전망 확충이 관건이다. 한국전력은 전남과 포항 데이터센터 건설에 맞춰 765kV 초고압 송전선 신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주민 수용성과 건설 속도다. 과거 충청권과 경기 지역에서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간 이어진 사례가 있다. 지상 송전망은 반발이 크고, 지하화는 비용이 최소 5배 이상 증가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AI 인프라 확장은 전력 생산보다 송전망 구축 속도가 더 큰 제약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송전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권 AI 전략의 성패를 좌우할 숨은 변수다.
냉각과 물 자원의 과제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막대한 냉각수 사용이 필요하다. 포항과 전남은 바닷물을 활용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가진다. 그러나 해수 방류에 따른 환경 문제, 지역 주민 반발, 수자원 관리 체계가 주요 과제로 떠오른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냉각수 재활용률을 높이고 해수 냉각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이 검토 중인 부유식 데이터센터는 해수 냉각을 직접 적용해 냉각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물 부족과 데이터센터 갈등은 빈번하다. 미국 애리조나, 인도 하이데라바드 사례처럼 데이터센터가 지역 물 사용량의 10%를 차지하며 갈등을 빚은 경우가 있다. 한국은 이런 해외 사례를 교훈 삼아 물 자원 관리 체계를 조기에 정비할 필요가 있다.
산업 간 전력 경쟁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포항의 경우 포스코 제철소와 데이터센터가 같은 전력망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포스코 관계자는 “산업 간 전력 사용량이 동시에 늘어나면 안정적 공급이 우려된다”며 “국가 차원의 전력 우선순위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AI 데이터센터를 국가 전략 시설로 지정해 전력 우선 공급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기존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 전력 가격 상승 문제는 동시에 풀어야 할 과제다.
국제 경쟁과 에너지 안보
AI 인프라와 전력 문제는 국제 경쟁 속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아마존이 대규모 재생에너지 기반 데이터센터를 확충하고 있다. 일본은 원자력 전력을 활용한 데이터센터 허브 전략을 추진한다. 중국은 수력과 석탄을 결합한 대규모 AI 클러스터를 운영한다.
한국이 주권 AI 모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안보가 필수다. LNG 수입선 다변화, 원자력 발전소 가동률 조정, 재생에너지 비율 확대가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산업 전략이자 외교 전략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국가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수준의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에너지 정책을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닌 국가 산업 전략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긍정적 전망, 한국형 주권 AI와 에너지 전략
이재명 정부의 주권 AI 전략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다. 전력망 확충,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균형, 송전망 구축, 물 자원 관리까지 포함하는 국가 인프라 개혁이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자 에너지 수입국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형 소버린 AI 모델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산업 자립과 에너지 전략을 동시에 통합한 국가 모델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한국형 AI 고속도로의 숨은 토대
90만 웨이퍼 생산, 전남·포항 데이터센터 건설, 부유식 데이터센터 구상은 모두 전력망과 에너지 전략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샘 알트만 대표의 합의는 단순한 산업 협력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AI 고속도로의 두 번째 단계는 바로 에너지다.
한국이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 체계를 마련한다면, 주권 AI 전략은 기술·금융·지역 균형을 넘어 국제적 규범 경쟁에서도 강력한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다. 에너지를 장악한 나라만이 AI 시대의 주권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