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베트남, ‘수출-소비’ 관계에서 ‘공동 제작-공유’ 체계로 이동… 산업 협력의 상호 의존성 확대

[한류 3.0, 베트남③]콘텐츠 동맹으로 가는 길, 한류 산업의 구조적 전환

2025-10-07     전성진 기자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전성진기자]한류 산업의 중심축이 ‘제작국가’에서 ‘협력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5년 베트남콘텐츠산업동향 18호」에 따르면, 베트남은 최근 3년간 콘텐츠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11%를 기록했다.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는 한류 콘텐츠의 현지화, 공동 제작 프로젝트의 확대, 창작 인력 교류의 활성화가 지목된다. 한류는 더 이상 단일 국가의 문화 흐름이 아니라, 산업 협력 구조로서 기능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 기업은 베트남을 단순한 수출 대상이 아닌 생산 거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CJ ENM은 현지 제작사 Vie Channel과 합작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으며, 네이버웹툰은 현지 작가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베트남 법인을 통해 모바일 게임 운영 전반을 관리하며, 로컬 결제 시스템과 서비스 최적화를 병행하고 있다. 이 구조는 ‘한국의 기획력 + 베트남의 제작력’이라는 분업형 산업 모델로 정착되고 있다.

산업 구조의 전환은 투자 방향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조사한 ‘2024 한류 기업 해외진출 현황’에 따르면, 한국 콘텐츠 기업의 37%가 베트남을 주요 진출국으로 선택했다. 투자 목적은 판매 확대가 아니라 현지 제작·공동 유통으로 이동했다. IP 공동 개발, 현지 프로듀서와의 합작, 플랫폼 간 라이선스 교환 등 협력형 모델이 중심이 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산업 협력 확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30년까지 콘텐츠 산업의 GDP 기여도를 1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며, 외국 자본의 공동 제작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KOCCA(한국콘텐츠진흥원)와 KOTRA를 중심으로 한-베 공동펀드 조성, 콘텐츠 비즈니스 매칭, 기술 이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책과 산업이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협력 기반이 안정화되고 있다.

콘텐츠 산업 내 협력은 제작 단계를 넘어 기술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베트남의 스튜디오와 포스트프로덕션 기업들은 한국 기업의 영상 편집, AI 자막, 그래픽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 제작사는 베트남의 저비용·고효율 프로덕션 환경을 활용해 콘텐츠 제작비를 절감한다. 기술 교류가 인력 교류로 이어지며, 양국 간 산업 의존성이 심화되고 있다.

협력 구조의 확대는 경제적 효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베트남 공동 제작 콘텐츠의 평균 제작비 대비 수익률은 단독 제작 대비 1.7배 높았다. 현지화된 제작은 유통 비용을 줄이고, 현지 플랫폼과 광고 시장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협력형 모델은 콘텐츠 산업의 비용 구조를 혁신하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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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산업 협력의 확대는 새로운 과제도 남긴다. 저작권 관리, 수익 배분, 인력 표준화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필요하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 간 콘텐츠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제작 권리의 소유와 유통 경로의 투명성이 중요해졌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디지털콘텐츠 저작권 보호법’을 개정해 외국 기업의 저작권 등록 절차를 간소화했다. 한국 기업도 이에 맞춰 공동 제작 계약서를 세분화하고, 국제 표준화 절차를 강화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산업 협력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콘텐츠 동맹’ 수준의 제도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문화산업연구원은 2025년 보고서에서 “한류는 더 이상 단일 국가의 문화 수출이 아니라, 동남아 지역 전반의 산업 생태계와 연동된 구조”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공동 제작, 기술 교류, 인력 순환을 제도적으로 묶는 콘텐츠 동맹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장 측면에서는 민간 플랫폼 간 협력이 가장 활발하다. 베트남 OTT 플랫폼 VieON은 한국 드라마를 독점 공급받는 대신, 현지 제작 다큐멘터리를 한국 플랫폼에 역수출하는 상호 교환 계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협력 구조는 콘텐츠 교류의 상호성을 강화하고, 단방향 시장 의존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류 산업의 확장은 결국 구조의 문제로 귀결된다. 생산, 유통, 소비의 모든 단계가 국가 단위를 넘어 상호 연결되는 네트워크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된 콘텐츠 포맷이 베트남에서 재해석되고, 그 결과물이 다시 글로벌 시장으로 유통되는 과정이 일반화되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 한류는 ‘공유형 가치사슬(shared value chain)’로 진화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 변화는 인력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베트남 내 콘텐츠 관련 고용 인구는 2024년 기준 약 35만 명으로,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 제작사와 협력한 인력 비율도 전체의 28%를 차지한다. 공동 제작 프로젝트를 통해 현지 인력이 기획·편집·연출 등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콘텐츠 협력은 단순한 산업 거래가 아니라 인적 자원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교육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한류 산업은 향후 5년간 기술·세대·정책의 세 축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첫째, AI 번역·영상 합성·IP 분석 등 기술적 융합이 콘텐츠 제작 효율성을 높인다. 둘째,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이용자 세대 교체가 새로운 소비 패턴을 만든다. 셋째, 양국 정부의 산업정책이 협력 생태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이 세 축이 맞물릴 때, 한류는 산업 동맹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다.

베트남의 콘텐츠 시장은 한국 콘텐츠 산업이 아시아에서 확장할 수 있는 실험장이자 협력 모델이다. 콘텐츠는 단순한 문화 상품이 아니라, 기술·인력·경제가 결합된 산업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산업 간 협력이 확대될수록 한류의 구조는 ‘공유형 네트워크’로 진화하며,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문화 수출과 소비를 넘어 산업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