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트렌드2025⑧] 지속가능한 미술 — 환경, 윤리, 그리고 생태로의 회귀

소비에서 순환으로, 성장에서 책임으로 — 예술이 지구를 다시 바라보다

2025-10-17     임민정 기자
꾸바아트센터 전시장/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예술의 언어가 변하고 있다. 화려한 설치물과 대형 프로젝트가 주목받던 시대는 끝나가고, ‘지속가능성’이 예술의 새로운 미학으로 부상하고 있다. 2025년의 미술은 자본의 확장보다 생태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미술계는 이제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거치며 미술계는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거대한 조형물, 화려한 설치, 전 세계를 오가는 전시의 탄소 발자국은 예술의 낭만 뒤에 남겨진 현실적 문제로 드러났다. 작품 제작에 쓰이는 자재, 운송 과정의 에너지 소비, 전시의 폐기물 등은 모두 예술의 생태적 책임으로 이어진다. 예술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 지속가능한 실천을 요구받는 산업이 되었다.

이 변화는 작가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젊은 세대 작가들은 새로운 소재와 제작 방식을 실험하며 환경적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 재활용 금속, 버려진 플라스틱, 생분해성 섬유를 활용한 작품이 늘고 있으며, ‘제로 웨이스트 전시’를 선언하는 프로젝트도 확산 중이다. 영국 테이트모던은 전시 운영의 70% 이상을 재사용 자재로 전환했고,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지속가능 전시 매뉴얼’을 도입해 작품 제작 단계부터 탄소 배출을 계산한다. 예술은 더 이상 ‘창조의 행위’로만 머물지 않는다. 창조의 책임까지 포함한 새로운 윤리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미술 시장의 소비 패턴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희소성과 대형 작품이 높은 가치를 가졌지만, 지금은 ‘환경적 정체성’을 가진 작품이 시장에서 더 큰 주목을 받는다. ‘지속가능한 예술’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투자 기준이 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친환경 제작 과정을 공개한 작가의 작품은 평균 거래가가 22% 높았다. 윤리적 생산 과정이 예술의 부가가치로 작용하는 시대다.

생태적 전환은 단지 소재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 전시 방식까지 변하고 있다. ‘기후’, ‘순환’, ‘공존’은 2025년 미술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예술은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비인간적 존재와 환경의 감각을 포착하려 한다. 식물과 미생물, 물질의 생명성, 인간 이외의 감정 등 새로운 시선이 예술의 언어로 편입되고 있다. 예술이 자연을 그리는 시대에서, 자연과 함께 창작하는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임우경 교수 논문「생성형 AI를 활용한 초현실주의 바디아트 콘텐츠 연구」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AI와 기술 또한 이 생태적 전환에 기여한다. 데이터 기반 시뮬레이션은 전시의 이동 경로를 최적화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가상 전시는 작품 운송을 대체하며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디지털 기반 예술이 환경적 책임과 결합하면서, 예술의 기술화는 생태적 윤리의 도구로 재해석되고 있다. 기술은 소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구현하는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예술’이라는 이름이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부 기관과 기업은 ESG 이미지 제고를 위해 예술 프로젝트를 마케팅 도구로 이용한다. 환경 메시지를 내세운 전시가 실제로는 대규모 제작과 이동을 수반하는 모순된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은 형식이 아니라 과정”이라며 “진정한 변화는 전시의 규모가 아니라 운영의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윤리적 감수성은 미술의 주제뿐 아니라 협업 구조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역사회와 협력해 자원을 순환시키는 예술 프로젝트가 늘고 있으며, 작가 개인 중심의 작업에서 공동 창작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서울의 한 전시에서는 지역 주민이 버린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조형물을 만들었고, 그 과정 자체가 작품의 일부로 기록되었다. 예술은 더 이상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공동체의 실천으로 변하고 있다.

예술의 생태적 전환은 ‘속도의 미학’을 바꾼다. 과거 예술은 새로움과 혁신의 속도를 경쟁했지만, 이제는 느림과 반복, 지속이 미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품이 변하고, 재료가 썩으며 사라지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이 늘고 있다. 작품이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환경 속에서 변화하는 존재로 이해되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The Empire of Lights.1954)이었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2,100만 달러라는 역대급 가격에 낙찰됐다. 사진=magritte.com,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서양 현대미술과 초현실주의의 강세, 마그리트와 델보의 재조명

결국 지속가능한 미술은 예술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예술의 근원은 관계이고, 관계는 책임 위에서 유지된다. 환경과 인간, 예술과 사회가 서로를 돌보는 구조를 만들 때, 예술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실천이 된다. ‘지속가능성’은 미술의 한 장르가 아니라, 예술이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예술은 언제나 시대의 거울이었다. 자본의 시대에는 욕망을, 기술의 시대에는 진보를 비추었다면, 이제 생태의 시대에는 ‘공존’을 비춘다. 예술의 가치가 더 이상 가격으로 측정되지 않고, 생태적 윤리로 평가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인간이 지구의 일부임을 자각하는 순간, 예술은 비로소 다시 자연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