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트렌드2025⑥] 플랫폼 갤러리의 시대, 화이트큐브가 사라진다

예술의 전시 공간이 화면으로 이동하다, 디지털 플랫폼이 미술 유통의 중심으로 부상

2025-10-15     임민정 기자
KUVA ARTS CENTER.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전시장 벽이 더 이상 예술의 경계가 아니다. 흰 벽과 조용한 조명 아래 작품을 감상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미술의 중심 무대가 갤러리에서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전시는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설계한 가상의 화면 위에서 펼쳐진다. 작품은 걸리지 않고 업로드되고, 감상은 이동이 아니라 접속으로 이루어진다.

2025년 미술 시장을 보면 ‘플랫폼 갤러리’라는 개념이 이미 산업 구조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 뷰잉룸, 메타버스 전시, AI 큐레이션 플랫폼이 기존 화랑의 역할을 흡수하면서, 미술의 유통 경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 미술 거래의 41%가 온라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신흥 컬렉터층의 3분의 2가 작품 구매를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했다. 코로나 이후 가속된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플랫폼 갤러리의 등장은 단순한 유통의 변화가 아니다. 미술의 ‘경험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든다. 오프라인 갤러리에서의 감상은 공간적 몰입이 중심이었다면, 온라인 전시는 ‘참여형 감정 구조’를 갖는다. 관객은 작품을 클릭하고 확대하며, 자신의 감정 데이터를 남긴다. AI 큐레이터는 이를 분석해 개인화된 전시를 구성한다. 한 사람의 감정 패턴이 또 다른 전시의 기획 자료가 되는 구조다. 예술은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변하는 알고리즘적 체험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화랑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다. 작품을 실제로 감상하고 작가와 대화하는 경험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접속의 편의성’과 ‘시각적 즉시성’이 더 큰 가치로 작용한다. 뉴욕과 런던의 중소 갤러리는 운영비 부담과 관객 감소로 폐업이 늘고 있고, 반대로 온라인 기반의 전시 플랫폼은 급성장 중이다. 2024년 기준 세계 주요 디지털 아트 플랫폼의 거래액은 27억 달러를 넘어서며, 5년 새 세 배로 늘었다.

이 변화는 작가에게도 기회의 장이 된다. 과거 작가가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선 화랑의 초청이나 큐레이터의 선택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계정 하나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인스타그램과 아트시 플랫폼을 통해 해외 컬렉터와 직접 거래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플랫폼은 전시의 문턱을 낮추고, 예술의 진입 장벽을 허물고 있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플랫폼 중심 구조는 작품의 ‘물성’을 약화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화면 속 이미지로 소비되는 작품은 질감, 크기, 빛의 뉘앙스를 완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관객의 감정은 더 빠르게 반응하지만, 더 얕게 머문다. 작품은 체험이 아니라 콘텐츠로 소비되고, 전시는 감상의 장소가 아닌 소비의 공간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또한 플랫폼이 커질수록 알고리즘의 편향이 심화된다. 추천 시스템은 관객의 취향을 좁혀버리고, 비슷한 이미지와 형식이 반복된다. 주목받는 작가는 더 많은 노출을 얻고, 그렇지 못한 작가는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예술의 다양성이 데이터 효율성에 묻히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전환이 미술의 접근성을 넓히는 동시에, 알고리즘이 예술의 경계를 다시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플랫폼 갤러리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예술의 소비 구조가 세대의 생활 방식과 함께 변하기 때문이다. 모바일 세대에게 미술은 ‘찾아가는 전시’가 아니라 ‘흘러나오는 콘텐츠’다. 관객은 특정 작가나 작품보다 ‘감정 경험’을 소비한다. 플랫폼은 그 경험을 기록하고 분석해 또 다른 전시로 재구성한다. 예술은 점차 감상에서 참여, 참여에서 생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통 화랑들도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일부는 물리적 전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플랫폼 뷰잉 서비스를 병행한다. 또 다른 화랑들은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관객의 시선 데이터를 분석하고, 작품 배치를 조정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완전히 융합된 하이브리드 전시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술은 예술의 외연을 넓히지만, 인간의 감각을 대체할 수는 없다. 실제 공간의 빛, 냄새, 온도, 정적은 화면으로 전송되지 않는다. 플랫폼 갤러리의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실물을 보고 싶어 하고, 작품 앞에 서서 ‘무언가를 느끼는 순간’을 갈망한다. 디지털화된 감상은 효율적이지만, 예술의 본질은 여전히 물리적 만남 속에서 살아 있다.

결국 2025년의 미술은 두 공간 사이에 존재한다. 하나는 현실의 갤러리, 다른 하나는 데이터의 플랫폼이다. 전자는 감정의 깊이를, 후자는 확산의 속도를 제공한다. 예술의 미래는 이 두 축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 플랫폼이 예술의 문을 넓힌다면, 화랑은 그 문을 인간의 감정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