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트렌드2025①] 알고리즘의 붓, AI가 바꾼 창작의 정의
창작자 없는 예술, 관객은 누구의 감정을 보고 있는가
[KtN 임민정기자]세계 현대미술 시장이 급격한 양극화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상단의 백만 달러급 작품은 줄어드는 반면, 온라인 중심의 저가 작품 거래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AI와 디지털 전환이 창작과 유통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의 주체와 권력이 바뀌는 변곡점에 도달했다.
2024~2025 회계연도 세계 현대미술 경매 매출은 전년 대비 25% 감소한 14억 4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거래 수는 오히려 5년 연속 증가했다. 시장은 ‘고가 침체–저가 팽창’의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백만 달러 이상 낙찰 건수는 29% 감소했는데, 고가 걸작의 위탁 자체가 줄어든 영향이다. 반면 5천 달러 미만 작품은 전체 거래의 85%를 차지하며 약 12만 5천 점이 새 주인을 찾았다. 저가 구간 매출은 1억 1천 4백만 달러로 전체의 8%에 불과하지만, 거래 기반을 폭넓게 확장시켰다.
1천 달러 미만 작품 시장도 눈에 띈다. 2020년 이후 71% 성장했고, 호주·이탈리아·폴란드의 중소 경매사들이 모바일 앱과 온라인 경매를 통해 이 구간을 키웠다. 신진 구매자의 절반 이상은 30대 이하로, 세대 교체가 본격화되고 있다. 반대로 상단 시장은 위축됐다. 백만 달러 이상 작품을 낙찰받은 40세 미만 작가는 매튜 웡, 루시 불, 마이클 아미티지 등 손에 꼽힌다. 기술 실험으로 주목받은 로봇 작가 ‘아이 다(Ai-Da)’가 백만 달러를 넘긴 것도 상징적 사건에 그쳤다. 신진 작가의 폭발적 성장보다 중저가 시장의 안정적 확장이 동력으로 작용했다.
국가별로는 미국·중국·영국이 여전히 중심이다. 세 나라의 합산 매출은 11억 5천만 달러로 전 세계의 79%를 차지한다. 미국의 매출은 5억 7천만 달러로 27% 줄었지만, 거래량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온라인 저가 거래의 확산이 신규 참여자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위축 폭이 더 컸고, 영국은 런던 중심의 경매 활성화로 비중을 높였다. 결과적으로 고가 중심의 시장이 정체된 반면, 중저가 시장이 지역적으로 확산됐다.
여성 작가의 부상도 뚜렷하다. 남아공 출신 리사 브라이스가 689만 달러를 기록했고, 말리네 뒤마는 1,360만 달러로 생존 여성 화가 최고가를 새로 썼다. 제니 새빌의 2018년 기록을 넘어선 이 결과는 여성 작가 재평가 움직임이 상업 시장에 실질적으로 반영된 첫 사례로 읽힌다. 큐레이터 중심의 회고전, 여성 작가 전시 확대가 시장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AI와 디지털 기술은 시장의 두 번째 축이다. AI 보조 창작은 예술 생산 속도를 끌어올렸고, 온라인 플랫폼은 소비의 문턱을 낮췄다. AI가 만들어낸 예술은 감정을 재현하지 않고 데이터를 해석해 시각화한다.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데이터가 주체가 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예술의 주체가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며, ‘창작’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확산은 동시에 법적 공백을 낳았다. AI가 독자적으로 만든 작품은 미국 저작권청 기준상 보호 대상이 아니다. 인간이 결과물의 선택이나 편집에 개입해야만 보호가 가능하다. 이 모호한 경계가 국가별로 다른 해석을 낳으며, 향후 시장 질서를 좌우할 변수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예술계는 AI 협업 작품의 서명과 저작권 귀속 문제를 논의 중이다.
AI는 창작만이 아니라 가치 평가의 방식도 바꿨다. AI 분석 플랫폼은 전 세계 300만 건의 거래 데이터를 학습해 작가별 상승 가능성을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한 아트펀드가 등장했다. AI가 예술을 만들고 또 다른 AI가 그 가치를 평가하는 순환 구조가 현실이 됐다. 작품의 감정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계산한 지표가 시장의 온도를 결정한다. 예술의 언어가 감정에서 데이터로 옮겨가며, ‘감정의 경제’가 ‘데이터의 경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현대미술 시장의 사회적 의미도 크다. 첫째, 접근성이 넓어졌다. 중소 경매사의 모바일 플랫폼이 첫 구매자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둘째, 교육과 취향 형성이 유통망과 결합해 지역 다양성이 확산되고 있다. 셋째, 고가 구간은 희소성과 사적 거래로 더욱 폐쇄적으로 움직이면서 공개 시장의 상징성은 낮아졌다. 이 세 변화가 결합하면서 거래 수는 늘고 평균 단가는 낮아지는 ‘정상화’가 진행 중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걸작 공급이 회복될 경우 상단 매출이 반등할 수 있다. 반면 온라인 저가 거래는 성장세 둔화 가능성이 있다. 거래 속도는 높지만 가격 탄력성이 낮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술 변수다. 디지털 전시 포맷과 AI 창작이 상업적 가치를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릴지가 남은 과제다. 지금까지의 AI 관련 사례는 상징적 의미에 머물렀지만, 향후 시장 구조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종합하면 현대미술 경매 시장은 상단의 수축과 하단의 팽창이 동시에 일어나는 구조적 전환기에 있다. 매출의 지붕은 낮아졌지만 바닥은 넓어졌다. 공급과 유통의 전환이 만들어낸 결과다. 표면적 수치는 후퇴처럼 보이나, 거래 기반 확대와 세대 교체는 구조의 건강성을 지지한다. 예술 시장의 미래는 더 이상 소수의 컬렉터가 아니라 다수의 참여자가 형성하는 생태계로 이동하고 있다.
AI는 예술의 종말을 가져오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의 범위를 넓혔다. 감정과 데이터, 철학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창작이 태어나고 있다. 예술은 인간의 감정과 기계의 계산이 교차하는 언어로 진화하고 있다. 창작의 정의가 바뀌는 지금, 예술의 중심은 한 개인이 아니라 인간과 기술이 함께 사고하는 ‘공동 창의’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