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트렌드④] OTT가 삼킨 스크린, 영화의 ‘극장성’은 어디로 갔나

편의와 접근성이 예술의 시간을 대체한 시대, 스크린은 더 이상 하나의 공간이 아니다

2025-10-10     신미희 기자
케데헌, 넷플릭스 역사 새로 썼다… “5주 차 최고 시청률, 빌보드까지 정복” 사진=2025 07.23  넷플릭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집 안의 화면이 극장을 대신하고 있다. OTT 플랫폼은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는 편의성을 앞세워 스크린의 권위를 흡수했고, 관객은 더 이상 어두운 상영관에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상영 시간이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클릭 한 번으로 연결되는 무한한 목록 속에서 영화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변했다. 관람은 체험이 아닌 습관이 되었고, 영화는 집중의 예술에서 배경의 콘텐츠로 바뀌었다.

2024년 기준 국내 OTT 이용자는 3,200만 명을 넘었고, 1인당 하루 평균 시청 시간은 97분에 달했다. 같은 기간 극장 관객 수는 30퍼센트 가까이 줄었다. 이 수치는 기술이 아니라 문화의 전환을 보여준다. 플랫폼은 시간의 제약을 해체하며 관람의 구조를 재편했다. 관객은 표를 예매하지 않아도 되고, 상영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영화는 더 이상 ‘함께 보는 경험’이 아니라 ‘혼자 선택하는 영상’이 됐다. 이 변화는 단순한 관람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꿔놓은 사건이다.

한때 극장은 감정의 공동체였다. 어둠 속에서 낯선 타인과 숨을 맞추며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간은 공동의 정서를 형성했고, 그 집중의 밀도가 영화의 ‘극장성’을 완성했다. 장면이 끝날 때마다 들리는 미세한 숨소리,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정적, 불이 켜지는 순간의 여운이 모두 감상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제 관객은 스크린을 개인의 화면으로 바꾸었고, 영화는 관계의 예술이 아니라 개인화된 취향의 일부로 소비된다. 극장은 감정의 공간이었지만, 플랫폼은 감정을 데이터로 분해했다.

배우 임시완, 박규영, 조우진이 넷플릭스 영화 '사마귀'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OTT는 관객의 모든 행위를 기록한다. 재생 중단 시점, 시청 완료율, 반복 구간, 탐색 시간까지 모두 데이터화된다. 이 수치가 곧 추천 알고리즘의 기준이 되고, 알고리즘은 산업의 방향을 바꾼다. 감독의 의도는 클릭률에 밀리고, 예술의 리듬은 소비의 속도에 맞춰진다. 영화는 스토리의 예술이 아니라 확률의 상품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플랫폼의 개인화는 다양성을 넓힌 듯 보이지만, 실상은 새로운 편향을 만든다. 관객은 자신이 선호하는 장르와 분위기만 반복적으로 추천받고, 낯선 영화는 목록 속에서 밀려난다. 우연히 발견하던 작품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취향은 강화되지만 폭은 좁아진다. 데이터는 효율을 높였지만, 감정의 확장을 줄였다. 극장이 주던 ‘예상치 못한 감정의 순간’은 알고리즘의 계산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디즈니+ 오리지널 사극 드라마 탁류 제작발표회 현장. 배우 로운, 신예은, 박서함, 박지환, 최귀화, 김동원과 추창민 감독.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멀티플렉스 체계는 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스크린 수와 시설 경쟁은 여전하지만, 관객의 선택 기준은 이미 접근성과 시간으로 이동했다. 상영관은 거대한 구조물로 남았지만, 관객의 발길은 집 안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영화의 개봉이 사회적 사건이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콘텐츠 공개일에 불과하다. 배급사는 여전히 극장 개봉을 상징적인 출발점으로 설정하지만, 실제 수익 구조는 OTT 공개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극장은 영화의 시작이 아니라, 홍보를 위한 의례적 공간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극장이 가진 가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스크린 앞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밀도, 타인과 함께 웃고 울며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은 어떤 기술도 대체할 수 없다. 극장은 관객의 감정을 공명시키는 유일한 장소이며, 그 어둠 속 집중의 시간이야말로 영화가 예술로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근거다. 문제는 이 경험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객이 다시 극장으로 돌아오려면 시설의 개선이 아니라 감정의 복원이 필요하다.

디즈니+ 오리지널 사극 드라마 탁류 제작발표회 현장. 배우 로운, 신예은, 박서함, 박지환, 최귀화, 김동원과 추창민 감독.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 산업은 기술을 좇는 대신 감정을 설계해야 한다. OTT가 효율과 접근성을 대표한다면, 극장은 여전히 감정과 여운의 상징이다. 그러나 극장이 그 정체성을 잃는다면, 영화는 결국 하나의 영상 스트림으로만 남게 된다. 감정의 공유가 사라진 예술은 산업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공동의 기억이 사라진 시장은 흥행의 속도만 남긴다.

지금 영화 산업이 마주한 과제는 기술과 감정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다. OTT는 영화의 문턱을 낮추었지만, 동시에 예술의 온도를 낮췄다. 극장은 더 이상 기술의 경쟁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객이 다시 감정의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극장은 ‘함께 본다’는 경험의 본질을 복원해야 한다. 영화가 태어난 곳은 언제나 어둠 속이었고, 그 어둠은 집중과 몰입의 상징이었다. 그 시간을 되찾을 때 비로소 스크린은 다시 살아난다.

KtN 리포트

OTT의 시대는 영화의 유통을 혁신했지만, 동시에 예술의 리듬을 지워버렸다. 편의와 접근성이 감동을 대체할 수 없고, 효율은 기억을 대신하지 못한다. 극장은 다시 감정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둠 속의 정적, 공동의 웃음, 스크린이 만들어내는 밀도는 여전히 영화의 본질이다. 산업이 기술의 속도를 좇는 동안 예술은 여운을 잃었지만, 관객이 다시 극장으로 돌아올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것이 영화가 콘텐츠가 아닌 예술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