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감정이 상품이 된 시대, 브랜드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2025-10-16     김상기 기자
Hit the Virtual Racetrack With BOSS and Aston Martin's F1 Team. 사진=BOS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상기기자]럭셔리 산업은 오랫동안 인간의 욕망을 다뤄왔다. 그러나 최근의 럭셔리는 욕망을 넘어서 감정을 팔고 있다. 이제 브랜드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감정을 설계하는 공장에 가깝다. 스포츠와 패션, 기술이 결합한 협업 구조 속에서 브랜드는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데이터를 통해 그 감정의 흐름을 측정한다. 감정이 산업의 언어로 환산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보스와 애스턴마틴이 공개한 가상 체험 프로그램은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브랜드는 레이싱의 긴장감과 몰입을 공간 컴퓨팅 기술로 구현했고, 소비자는 실제 경기의 감정을 모사한 경험을 매장에서 체험한다. 기술은 감정의 재현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감정의 자율성을 빼앗았다. 브랜드가 감정을 연출하는 순간, 감정의 진정성은 통제의 대상이 된다.

럭셔리 산업은 지금 ‘감정의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경쟁에 들어섰다. 감정을 얼마나 강하게 자극하고, 얼마나 오래 유지시키느냐가 브랜드 가치의 척도로 바뀌었다. 하지만 감정의 반복은 피로를 낳는다. 소비자는 더 큰 자극을 요구하고, 브랜드는 그 속도를 맞추기 위해 감정을 설계한다. 그 과정에서 감동의 본질은 점점 희미해진다. K트렌드뉴스 분석에 따르면, 현재 럭셔리 시장의 위험은 공급 과잉이 아니라 감정 과잉이다.

감정의 피로는 브랜드의 피로로 이어진다. 사람은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지만, 반복된 감정에는 무뎌진다. 몰입형 체험과 디지털 퍼포먼스가 늘어나도 감정의 밀도는 줄어들고 있다. 감정은 체험의 순간에 소모되고, 브랜드의 감동은 소비 직후 사라진다. 감정을 상품으로 다루는 산업은 결국 감정의 신뢰를 잃게 된다.

이때 스포츠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 스포츠는 여전히 감정의 원형을 품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경기, 실패와 승리의 교차,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면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진정성의 공간이다. 럭셔리 브랜드가 스포츠를 파트너로 선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의 진정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스포츠조차 감정의 연출 도구로 전락한다.

이제 브랜드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균형이다. 감정을 조율하되 통제하지 않고, 연출하되 조작하지 않는 태도다. 감정의 자유를 보장하는 브랜드만이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감정을 팔면서 감정의 윤리를 지키는 일, 그것이 산업이 지속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기술이 감정을 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감정의 진심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감정의 산업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은 결국 관계의 진정성이다. 럭셔리는 화려함보다 신뢰를, 감정의 연출보다 감정의 여운을 남길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브랜드가 감정을 설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감동을 설계할 수는 없다. 감정이 남는 산업만이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