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트렌드①] 게임 강국의 새로운 무대, 인도네시아
성장의 이면에 남은 구조적 불균형과 산업 주권의 과제
[KtN 전성진기자]인도네시아 게임 시장은 동남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15억 달러를 넘어섰고, 모바일 중심 이용률은 전체 게이머의 90퍼센트에 달한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95퍼센트를 넘어서면서 게임은 생활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화려한 수치 뒤에는 한 가지 명확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시장의 대부분을 외국 기업이 점유하고 있고, 현지 개발사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에 묶여 있다. 성장의 중심은 인도네시아이지만, 산업의 주도권은 국외에 있다.
자카르타의 중소 게임 개발사 대표 루디 위자야는 현장의 현실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 위자야가 이끄는 개발팀은 10인 규모로 모바일 RPG를 제작했지만 광고비와 수수료 부담으로 6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앱스토어와 전자결제 플랫폼 수수료로 납부하면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 위자야는 “창작보다 유통이 더 큰 권한을 가진 시장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현지 개발자들의 목소리는 산업의 화려한 수치 속에서 자주 묻히고 있다.
인도네시아 시장의 급성장은 모바일 혁신에서 비롯됐다. 저렴한 데이터 요금과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은 게임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전자결제 플랫폼 GoPay, Dana, OVO의 확산은 소액 결제를 일상화하며 인앱 구매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용자들은 간단한 클릭 한 번으로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고 구독형 서비스를 이용한다. 매출은 매년 20퍼센트 이상 성장했고, 코로나19 이후 이용률은 40퍼센트 증가했다. 그러나 결제와 유통을 장악한 플랫폼 구조는 개발사의 독립성을 약화시켰다. 플랫폼이 시장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배분받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창작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다.
e스포츠의 부상은 산업의 또 다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모바일 레전드 프로리그(MLBB MPL)는 시즌마다 수천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이며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로 성장했다. 프로선수는 스타로 인식되고, 리그는 방송·광고·굿즈 산업과 연결되며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했다. 삼성전자, 텔콤셀, 토코피디아 등 대형 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하며 산업의 외연이 확장됐다. 시청자의 다수는 20대 초반의 MZ세대로, 여성 시청자 비율도 35퍼센트 수준까지 높아졌다. 게임은 남성 중심의 오락에서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문화 콘텐츠로 진화했다. 하지만 e스포츠의 핵심 종목 대부분이 해외 게임 IP에 기반한다는 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는다. 경기장은 자국에 있지만 수익의 흐름은 국외로 향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문화 주권의 문제는 산업의 불균형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작동한다. 인도네시아 창조경제청(BEKRAF)은 2024년 보고서에서 “게임은 국가 정체성을 반영하는 문화 산업이며, 자국 IP 확보는 문화 자립의 핵심 과제”라고 명시했다. BEKRAF은 디지털경제 2045 전략에 따라 게임 산업을 수출형 창작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세부 정책을 추진 중이다. 세금 감면, IP 공동개발 지원, 스타트업 펀드 조성 등이 포함됐다. BEKRAF은 올해 처음으로 현지 인디 개발사 30곳에 개발지원금을 제공했다. 창조경제청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단순 소비국이 아니라 창작국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현지 문화와 스토리를 담은 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시작됐지만, 민간 산업 생태계가 얼마나 빠르게 그 흐름을 흡수하느냐가 관건으로 지목된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와의 문화 교류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왔다. K팝과 드라마를 통해 이미 강한 문화적 인지도를 확보했고, 콘텐츠 소비층이 두텁게 형성됐다. 이러한 기반은 게임 산업 협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 개발자와 공동 IP를 제작하거나 현지에서 직접 퍼블리싱을 진행하는 형태는 상생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넷마블은 인도네시아 IT대학과 협력해 게임 개발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캐릭터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단순한 수출 모델을 넘어 양국이 함께 콘텐츠 산업을 설계하는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한류 콘텐츠가 만든 문화 공감대는 게임 산업 협력에도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시장 변화의 중심에는 세대 교체가 자리한다. 인도네시아 게이머의 평균 연령은 23세로, MZ세대가 산업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MZ세대는 게임을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회적 소통과 자기표현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유튜브와 틱톡을 통해 플레이 영상을 공유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교환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 여성 게이머 비율은 40퍼센트를 넘었고, 여성 이용자가 운영하는 커뮤니티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스트리머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여성 이용자는 게임 산업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이용자층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마케팅과 스트리머 협업, 굿즈 산업을 확대하며 새로운 수익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게임이 문화 소비이자 창작 행위로 확장되면서 사회경제 전반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인도네시아 게임 시장의 구조는 성장과 종속이 공존하는 형태다. 시장은 빠르게 확장되고 있지만 외국 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와 로컬 개발 생태계의 취약성이 병존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지원과 산업 참여층의 다양화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자결제 인프라의 고도화, MZ세대의 창작 참여, 여성 게이머의 확대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산업은 점차 자생적 구조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의 균형이다. 플랫폼의 독점 구조를 완화하고 로컬 개발사의 역량을 강화하며, 문화적 독립성을 지탱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10년은 인도네시아 게임 산업의 향방을 결정짓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기업 중심의 구조가 지속된다면 산업의 외형은 커지겠지만 문화적 자립은 어려워질 것이다. 반대로 현지 창작 역량과 정부의 지원이 맞물리면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콘텐츠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할 수 있다. 한국 콘텐츠 산업과의 협력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촉매가 될 수 있다. 게임 산업은 더 이상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미래의 문화 주권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